디지털의 빈틈은 더 나은 기술이 아닌 아날로그로

  우리는 지금 빠르고 정확한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일상처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극도로 편리한 시대에 ‘아날로그’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필름현상 카메라의 부활, 디지털과 접목된 '구닥캠'

  최근 몇 년 사이 10~20대 사이에서 아날로그 감성이 유행하고 있다. 몇 번의 터치로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마트폰을 두고, 현상한 후에야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있는 일회용카메라의 수요가 늘고 있다. 2012년 파산에 이르러 필름생산을 중단했던 ‘코닥(Kodak)’이 5년 만에 다시 생산에 착수해 전 세계에 공급하게 된 사례만 봐도 아날로그로의 회귀에 얼마나 힘이 실리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아날로그 필름 팬들은 고화질에 자동으로 보정되는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가 의도할 수 없는 빛 번짐과 한정된 횟수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공들여 찍게 되는 점에서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추억에 잠긴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일회용카메나 필름카메라는 구하기 어렵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는데 이런 어려움에 아날로그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면서 디지털이 접목돼 쉽게 접할 수 있는 ‘구닥(Gudak Cam)’앱이 출시됐다. 애플리케이션 유료 앱 순위 상위권에 드는 ‘구닥’은 필름 카메라의 방식을 차용해 한 번 촬영에 24장의 사진만 찍을 수 있으며, 3일 후에나 찍힌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아날로그 필름 팬들이 필름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였던 빛 번짐 현상도 재현했다. 디지털 시대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끌어온 사례다.

 

아날로그로의 회귀

  데이비드 색스의〈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아날로그가 다시 관심을 받게 된 이유로 ‘경험의 즐거움’을 꼽는다.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LP판만 해도 그렇다. 디지털시대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데이터로서의 음악을 손에 넣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음악을 소유하는 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취향도 의미가 없게 됐다. 하지만 LP판은 크고 무거우며, LP판을 재생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관리에도 공을 들여야 하고, 재생에 있어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직접 손으로 넘겨가며 LP판들을 살펴보고, 가끔은 판 위 먼지를 불어내며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다. LP판의 표면을 긁는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까지. 음악을 듣기 위해 손과 귀와 눈 그리고 입까지 동원된다. 번거롭고 음향적으로 더 뛰어나지도 않지만, LP판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더 큰 참여감과 만족감을 줄 수밖에 없다. 또한 기술 진화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종이와 펜이 있다.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을 기록할 때는 키보드나 터치스크린보다 펜이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는 최고의 솔루션이라는 것이다. 첨단 기술의 한계를 아날로그가 채우는 것이다.
  언론정보학과 양은경 교수는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향수가 디지털 문화의 특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며 “정보의 표준화, 정확성, 신속성 등을 특징으로 하며, 효율성과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이에 지치고 낙오되며 표준화된 문화 속 개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는 다소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정감 있고, 따뜻한 문화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디지털에 둘러싸인 우리는 좀 더 촉각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경험을 갈망한다. 감각을 동원해 물건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그에 대한 물질적인 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들의 새로운 돌파구가 된 아날로그

  기존의 비즈니스 세계는 디지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연구에 힘을 쏟고, 더 나은 기술을 가진 거대 기업이 이익을 독점하게 된다. 하지만 아날로그 붐이 시작된 이상, 디지털에 목매는 것보다 아날로그 기술을 새롭고 참신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돋보이게 된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을 통해 소규모 기업이 경쟁업체가 적은 틈새시장을 노리게 된다.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된 포스트디지털 경제의 모델에 대해 언급한다. 포스트디지털 경제의 모델이 노동과 자본 혹은 거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이익의 균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실리콘 밸리의 테크기업보다 작은 레코드점이나 시계공장이 지역 경제에 더욱 넓고, 분배적인 이윤과 활력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강상의 이유가 아날로그 기술에 힘을 실어준다.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중력이 흐려지고, 스트레스와 불안, 뇌기능이 저하되는 등의 증명된 사실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아날로그를 선택하게 하면서, 디지털 시대에 뒤처진 소규모 기업들에게 돌파구를 만들어준 것이다.

 

곳곳에서 고개 드는 아날로그 감성

  카메라나 다이어리, 종이책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와이드 팬츠, 벙거지 등 1980~1990년대에 유행했던 것들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옛스러움에서 오히려 독특함을 느끼고, 정감을 느끼며, 개성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발전된 기술의 것들이 주는 편리함, 효율성과 반대됨에도 감각으로 소통하는 비효율적 아날로그 것들에서 ‘쿨’함을 느끼는 것이다. 아이폰 X를 보면서 신기해하고, ‘쿨’함을 느끼는 것처럼,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빛바랜 사진을 ‘쿨’하게 느낀다. 오윤아(스포츠과학·4)학우는 “휴대폰카메라를 주로 이용하지만 굳이 일회용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을 찍기도 한다”며 “손이 많이 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멋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디지털은 더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다. 아날로그 감성을 지향한다고 해서 디지털과 척지고 디지털의 대안을 아날로그에서 찾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과하다. 한 쪽으로의 무조건적 지향이 아닌 융합을 찾아 놓고 갈 것은 놓고, 가져갈 것은 가져가며 앞으로 나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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