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보사가 펜을 들지 않는다면

  만약 학보사가 펜을 들지 않았다면 대학 문화와 학내 여론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보사가 포함된 대학 언론은 신문편집국, 방송국, 영자신문편집국 그리고 교지편집국으로 구성된다. 각 기관에서는 교내 문학상과 대학 가요제, 방송제 등 다양한 학생 참여 행사를 개최한다. 이러한 행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대학 내의 문화 현상 창조는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학내 뉴스를 전달하는 역할 자의 부재로 각종 소식이 학생들에게 무사히 전달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대학의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생회 선거철에 열리는 후보자 정책토론회 역시 학보사에서 진행하므로, 토론회가 개최되지 못하는 불상사에 따라 학생들의 알 권리는 보장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투표에 관한 현명한 선택 역시 불가했을 것이다.
  또한, 학보사가 펜을 들지 않았다면 대학 청년들의 목소리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학보사는 그 대학의 학생 기자들로 구성된다. 그들은 항상 배움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으며 대학, 더 나아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일마저도 고찰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정립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학우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글과 음성 혹은 시각적 영상으로 풀어낸다. 무엇보다 대학 언론은 학내 여러 구성원 중에서도 일반 학생들의 의견에 경청하고 그것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대학 청년들의 목소리가 표출된 데에는 학보사의 일조가 뒷받침됐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불끈 쥔 주먹을 휘저으며 독재 타도를 외치던 시절 학보사가 펜을 들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니, 뜨거운 마음으로 잡은 펜을 짓누른 그림자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그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펜대를 바르게 굴리지 않는다며 손가락질하는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책할 어린 청년들도 없었을 테다.
  그렇다면 약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학생 기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물론 과거와 달리 우리는 호화스러운 평화 속에서 펜을 쥐고 있지만, 어딘가를 억누르고 있는 그림자가 아직 곳곳에 스며있는 듯하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하며 우리를 설득해 위에 서려 한다. 결국 우리는 형태만 달리한 채로 여전히 유효한 비정의를 애써 외면하며 명랑만을 그려낸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외부의 어떤 게 아닌 우리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부란 나와 동료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두려움일 수 있다. ‘의견표출로 인해 내가 해를 당하진 않을까?’ 혹은 ‘나의 의견에 동조해주는 이가 없으면 어떡할까?’ 하는 근심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려워하는 것의 정체도 알지 못한 채, 역사상 최고의 자유 속에서 아직도 눈칫밥 가득 담긴 그릇을 내려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학보사가 펜을 들지 않는다면 부족한 인력 탓에 밤새 글자와 씨름하고 또, 매년 줄어가는 운영비에 한숨 쉴 청년은 없을 것이다. (물론 동시에 대학의 골칫거리도 하나 줄겠지.)
그러나 제일 무서운 건 학보사의 업무가 중단되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다. 이 끔찍한 비극을 막기 위해선 학우들의 눈길이 절실하다. 결국 그들의 관심으로써 우리는 존립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학보사의 젊음은 오늘도 펜을 든다. 

한남대 교지 편집국장 정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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