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현정(破邪顯正)은 정사(正邪)를 넘어선 자비(慈悲)의 표현이다

이현중 교수(한문학과)

  오늘날 우리사회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의 단어들이 있다. 그것은 미투(me too)와 4차 산업혁명 그리고 남북회담, MB구속수사, 개헌 등이다. 우리는 앞의 단어들을 보면서 적폐청산, 촛불혁명,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들을 연상하게 된다.
  적폐청산, 직접민주주의, 촛불혁명을 한마디로 나타내어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릇된 것, 거짓된 것, 잘못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냄을 뜻한다. 우리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파사현정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좋은 말에도 반드시 되돌아볼 부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살아가는 세계가 감각하고 지각한 내용과 일치한다는 소박한 실재론(實在論)에 근거하여 삶을 살아간다. 사람으로서의 내가 있고, 남이 있으며, 사회가 있고 국가가 있으며, 바름(正)과 그름(邪)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름을 제거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것은 양자가 함께 존재할 수 없음을 뜻한다. 만약 바름이 존재하도록 그름을 제거하는 작업 곧 파사(破邪)만을 하면 문제점을 갖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양파의 껍질을 제거하기 위하여 계속 껍질을 벗기다 보면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과 같다. 파사는 일시적으로는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하면 파사의 주체인 자신마저도 부정하게 되어 허무에 빠지게 된다.
  파사만을 행할 때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와 반대로 현정(顯正)만을 하게 되면 역시 또 다른 문제를 갖게 된다. 만약 그름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오로지 바름만을 드러내려고 하면 바름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정사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을 때 현정의 필요나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파사가 없는 현정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가 절실하게 느껴지지 못함을 뜻한다. 현정은 파사와 함께 할 때 비로소 가치와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파사가 없는 현정은 현정을 위한 파사와 마찬가지로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파사현정의 정과 사는 어느 하나만으로 성립될 수 없다. 그것은 양자가 상대적이어서 다른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한쪽도 성립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현정을 위한 파사일지라도 파사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파사를 바탕으로 한 현정 역시 자의적(恣意的)으로 느껴지게 된다. 결국 정과 사의 어느 일면만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정사를 구분하지 말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파사현정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파사현정은 정사를 구분하는 앎과 그것의 실천을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정사를 구분하여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실체로 여겨서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야 함을 뜻한다. 정사의 구분을 하면서도 구분에 얽매이지 않을 때 비로소 파사현정을 하면서도 파사현정에 얽매임이 없게 된다.
  파사와 현정의 어느 일면에도 얽매임이 없음은 파사는 현정을 위하고, 현정은 파사로 인하여 이루어짐으로써 파사와 현정이 둘이 아님을 뜻한다. 파사현정은 정사의 구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그것은 정사를 넘어서 양자의 구분이 없는 차원, 세계를 드러냄이어야 한다.
  정사를 넘어선 차원은 정과 사가 일체여서 없는 차원이다. 정사가 하나여서 양자의 구분이 없는 차원은 자비(慈悲), 인(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사가 없는 자비, 사랑의 차원에서 보면 파사와 현정이 모두 자비의 표현이다. 따라서 파사현정은 자비, 인의 실천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