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걸린 홍성담 화백 작품전

들숨날숨-슬픔으로 그린 생명들

아픔을 견디고 진실에 응답해야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 사건이 정말 사건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산출한다. 진실이 정말 진실이라면 우리는 그 진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때 해야 할 일은 그 진실과 대면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는 사건, 진실, 응답의 구조를 갖는다.
-신형철, <책을 엮으며> 중

욕조-어머니, 고향의 푸른 바다가 보여요

  사고와 사건은 구분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후 처리와 보상이 진행된다. 반면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사건 이후’를 고민해야한다. 어느새 4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사람들은 여전히 사건인지 사고인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인들은 참사 발생 당해부터 ‘사건’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박민규 소설가는 <눈 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 여름호)에서 일부 정치인의 사고-보상 프레임을 비판하며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도 이 글에 공감하며 “소설의 주인공이 진실에 응답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시시해질 뿐이지만, 우리가 그런 일을 하면 죽은 사람들이 한 번 더 죽는다”고 말했다.
  문학계뿐만이 아니다. 민중미술을 하는 홍성담 화백도 ‘세월호 사건 이후’를 생각했다. 홍 화백은 자신의 작업장을 찾아온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여러분을 위로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직면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소중한 아이들과 영원히 소통을 할 수 없다. 소통은 타자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이젠 한마디의 위로보다도 응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건 이후’를 고민하기에 앞서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홍 화백은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기위한 그림을 그렸다. 언론으로 보도된 사진에서 볼 수 없었던, 침몰하는 배 안의 희생자들의 표정을 그렸고, 물이 차오르는 배 안에서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아이의 눈물을 표현했다. 김희정 시인은 “홍성담 화백의 이번 작품은 아픔을 살려 우리들에게 상처를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이런 비통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작가의 마음을 그림을 통해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성담 화백의 작품이 대전에 걸렸다. 대전 중구 대흥동에 있는 미룸갤러리에서 세월호 사건을 표현한 홍 화백의 작품 18점이 전시된다. 지난 4월 5일부터 시작된 ‘2014. 4.16 참사 들숨날숨 展’은 홍 화백의 연작 작품을 한 달에 걸쳐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현재 8개의 작품이 전시돼있는데 오는 20일에는 다른 10개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미룸갤러리에서

  미룸갤러리는 김희정 시인이 운영하는 대흥동의 작은 갤러리다. 갤러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스쳐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전시를 하는 날엔 모든 시민들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다. 갤러리 이름인 ‘미룸’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美)와 방을 뜻하는 룸(room)을 더해 ‘아름다운 방’이란 의미를 가지며, 동시에 순우리말인 ‘미루다’의 명사형이기도 하다.
  동네 골목에 작은 시골집처럼 서있는 이 갤러리는 크지 않아 많은 작품을 수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적은 작품들을 오래 응시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김희정 시인의 그림 설명을 듣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덤이다. 김 시인은 이번 홍성담 화백 작품전을 두고 “상징적인 소재들이 매우 많다”며 “그냥 보고 지나가면 놓치는 게 많으니 오시는 분마다 설명을 다 해드린다”고 말했다.

 

표현된 상처들

  시인의 설명을 따라 작품을 감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은 <내몸은바다-3-기억교실>이다. 이 그림엔 세월호와 관련된 상징물이 모여 있다. 기울어진 교실, 아이의 몸을 채운 바다 속 물고기, 반만 그려진 태극기. 그리고 날아다니는 종이학. 칠판에는 오래 간직하지 못한 이름들이 새겨져있다. 이름이 모인 칠판이 기울어져있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서늘한 감정을 갖게 한다. 

4월 16일 오전 10시 20분


  조금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꿈>이다. 아이들이 세월호를 들고 있다. “이 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몸과 얼굴, 절망적인가요?” 사람들이 뻗어 올린 팔에는 힘줄이 보이는 것 같고 날카로운 눈매에서는 의지가 엿보인다. 김 시인은 “제목처럼, 꿈이다. 그럼에도 이뤄질 수 있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꿈은 ‘사건 이후’에 대한 다짐이고, 거기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의 아픔을 마주해야한다. 진실에 대한 직시는 ‘응답’에 선행돼야하기 때문이다. 방을 나오면 <4월16일오전10시20분>을 볼 수 있다. 침몰하는 배를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 목격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상을 통한 공감의 영역이다. 그림 속 아이들은 창밖의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절규하는 사람들 속에서 화백은 묵묵히 정면을 응시하는 한 아이를 본다. 홍 화백은 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슬펐다고 한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무심하게 정면을 응시하면서 하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저 아이를 그리는 순간에는 화실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품어왔던 꿈, 그리고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다른 그림들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전시돼있다. 김 시인은 “절망하는 모습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쩌면 희생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응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그림이다. 역으로, 감상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내 몸은 바다-3-기억교실

  지금, 여기서

  김 시인은 “홍성담 화백 작품을 보면, 여러 소재들이 모여 하나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지 세월호 참사의 슬픔만이 주제가 아니다.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진실의 퍼즐을 완성해가고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화백은 자신의 모습을 작품에 그려 예술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것이 화백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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