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기 힘든 온라인 비하표현

 

존중의 언어를 사용합시다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화자는 고궁을 나오면서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는 자신을 인식한다.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자들을 비판하지 못하고 비난의 화살을 약자에게 던지는 스스로를 생각한다.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야경꾼에게” 활시위가 당겨진다. 그는 “옹졸”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작은지 모래와 바람, 먼지, 그리고 풀에게 묻는다.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한 대목이다.
  권력자의 폐단에 대한 분노가 권력자에게만 향하지 않고, 소수자에게서 소수자에게로 내려가는 역사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궁처럼 그 수명이 길다. 하지만 익명 커뮤니티가 발달한 현재는 분노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상대적 다수자도, 소수자도 공평하게 무기를 쥐고, 또 공격당한다. 이 같은 사회를 이전보다 자유로워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과격한 언어가 일상화된 현 세태의 단면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오늘날 분노의 언어는 비하 표현으로 압축돼 나타난다. 이를테면 노인은 ‘틀딱충’으로, 여성은 ‘김치녀’로, 남성은 ‘한남충’으로 일컬어진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온라인 커뮤니티 16곳의 게시물 100개와 각 게시물에 달린 댓글 10개씩을 분석한 결과, 특정성별을 비하하는 표현이 153건이었다. 댓글 10개 중 1개는 비하표현인 셈이다.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월 혐오표현 특별 대응팀을 구성해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갑질에 대한 분노, 익명 공간으로 표출되다

  비하표현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청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선우현 교수는 과거부터 이어져온 불공정한 문화에서 초래됐다고 설명했다. 선 교수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어져온 윤리적인 정당성이 결여된 지배세력의 횡포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쳐왔다”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를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회에 대한 불만이 익명 공간에 와서 강자에게는 비아냥거림으로, 그리고 같은 약자에게는 자신이 당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불만을 푸는 게 비하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한국사회에 만연한 피해의식이 비하표현을 통해 표출된다는 의미다.
  광주여자대학교 교양교직과정부 김보은 교수도 “비하대상을 기준으로 비하표현을 유형화해보면 성, 인종, 사회적 위치 또는 지위, 정치적 성향 등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며 “이들로부터 어떤 대상이나 조직이 이원화가 됐을 때 비하표현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이 같은 사례는 오늘날이 극단적 이념의 시대라는 것, 그리고 대결과 배타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비하표현에서 극단적으로 나뉜 두 집단 사이의 갈등이 그대로 반영돼있음이 확인된다는 뜻이다.
  선플달기운동 등 비하표현을 자제하자는 캠페인이 오랫동안 진행돼왔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포털사이트 댓글을 보는 사람들은 비하표현에 익숙해졌다. 김 교수는 “과거와 달리 현재는 언어의 전파와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 매체들의 발전으로 인해 언어 재생산의 가능성이 높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게임 보이스채팅, 1인 미디어 등을 통해 언어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는 현 상황에서 비하표현은 익숙한 것이 되어간다.

 

익명 공간에서 현실로 스며들다

  현실에서 말할 수 없는 내재적 분노가 비하표현으로 가공돼 현실의 언어로 자리 잡는 경향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볼 수 있는 ‘패드립(인터넷 공간에서 성기 또는 성행위 등을 빗대어 부모나 가족 등을 비하하는 욕설)’은 이제 오프라인에서도 쓰인다. 대전 서구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A학생은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나 실수했을 때 장난처럼 주로 쓰인다”며 “나쁘게 받아들이고 정색하면 왜 쓸데없이 진지하게 듣냐고 따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작년 5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패륜놀이’, ‘패드립놀이’ 등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사이버 상에 나타나는 패륜적 욕설 표현을 집중 모니터링 한 바 있다.
  성소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에 따르면, 성소수자 응답자 중 98.0%가 온라인에서, 92.2%가 오프라인에서 비하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별개로 두고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다.
  김 교수는 “익명 상황은 상대방에게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며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습관이 될 수 있고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도 할 수 있는 게 말이고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숙명여자대학교 법학부 홍성수 교수는 비하표현이 실제 차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홍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혐오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가 정의하는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향한 비하표현이다. 예컨대 ‘맘충’이라는 비하표현이 ‘노키즈존’이라는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무분별한 비하표현, 조금은 자제해주길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익명사회에서 비하표현은 제재 받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비하표현이 타인의 표현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전우용 교수는 2016년 페이스북에 “패륜적 언어를 복제하여 패륜적 언어에 대적하는 게 정당해지면, '패륜적 언어'가 '정당한 무기' 자격을 얻게 마련이다”라며 일부 남성비하표현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후 전 교수는 “무식한 주제에 젠더권력의 수혜자가 된 한남충”이라는 비하를 받았고, 한 사이트 운영자는 전 교수에게 “제2의 성재기를 노리는 것이 좋을 듯”이라고 말했다. 성재기는 과거 남성연대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퍼포먼스를 하다 사망한 유명인으로, 최근에는 그의 이름을 자살의 대체어로 비하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날 이 같은 현상이 심해지면 익명사회의 순기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선 교수는 “이슈나 사안을 놓고 논쟁하는 경우,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비하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비하표현을 자제해야하겠지만 권력자에게 향하는 비하표현이 일부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선 교수는 “권력자가 권력을 공정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비하표현은 민심의 반영과 같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하표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로 가는 방향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선 교수는 약자들을 향한 비하표현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 교수는 “약자를 비하하는 것은 우리가 개인 윤리적 차원에서 제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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