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90의 시간

윤석준 기자/언론정보학과

  충남대학교에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8학번 새내기를 맞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체감이 된다.
  프라이머리는 시간을 화살에 비유했다. ‘너무 빨리 날아가 버려서 이제는 너무 멀어져버린 시간을 잠시만 잡아두고 싶다’고 표현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을 아주 잠깐만 잡아둘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시간을 잡아두고 싶은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만약 잡아둘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시간을 정말 알차게 쓸 수 있을까?
  기자 또한 시간을 잠깐만 잡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때로는 5분만 더 자고 싶다는 이유로, 때로는 강의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잡아두고 싶을 때도 있다. 확실히 그 시간들을 잡아둔다면 편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욕심임을 알 수 있다. 기자가 고집하는 시간이 ‘100’이라면 그것들은 단지 ‘10’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내게 주어진 ‘90’만큼의 시간은 그저 허송세월로 보내버리고, 남은 ‘10’에 대해 시간이 부족하다며 스스로를 재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상황이 닥쳤을 때 그때서야 행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학창시절에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시간을 2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절대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이며 또 하나는 상대적 시간인 카를로스의 시간이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말 그대로 시계가 나타내고 있는 시간을 의미하며 그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시간이라 사람마다 동등하게 주어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카를로스의 시간은 좀 다르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싫어하는 사람과 10분 걷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1시간 걷는 것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말하곤 한다. 이 예시는 카를로스의 시간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절대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상대적 시간은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 있는지 등에 따라 느끼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공부할 때, 5시간을 했다고 치면 4시간은 딴 짓하며 흘려보낸 시간이고 1시간을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시간을 계획적으로 쪼개서 체계적으로 쓰기도 하는 반면, 또 누군가는 체계적인 계획은 없지만 막상 닥쳤을 때, 몰입해서 해내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기보다 자신이 투자한 시간에 대해 만족할 수 없다면 흘려보낸 90의 시간에 관심을 돌릴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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