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과에서 태어나 모든 과를 아우르다!

  대학문화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과잠’,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오늘날 ‘과잠’을 살펴보자.

 

'과잠'의 시작

  어학사전에 따르면 ‘과잠’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과 잠바를 일컫는 말로 대게 잠바에 학교와 학과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과잠’의 유래를 다룬 기존의 매체들은 1865년 하버드 대학교 야구부에서 유행한 야구 잠바가 그 시초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0년대 서울권 대학을 중심으로 학과 내에서 잠바를 맞춰 입기 시작했으며 2000년 서울대학교의 럭비부가 처음 ‘과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에는 언제 ‘과잠’이 등장했을까? 우리 학교 03학번 A씨는 “초창기에는 체육과만 ‘과잠’을 입었다”고 말했으며 “그 당시에는 ‘과잠’이라는 말보다는 ‘야구잠바’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또한 “90년대 후반 학번인 선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의견이 제각각이라 정확한 유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과잠’이 생겨난 시기가 1990년대 후반인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캠퍼스 문화로 자리잡은 '과잠' 

  우리 학교에서 체육과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과잠’은 이제 대부분의 과들로 전파돼 대학 문화의 일환으로 자리 잡고 있다. A씨는 “재학 당시엔 체육학과만 ‘과잠’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학과 이니셜을 새겨 넣을 필요가 없었으며 타 과 학생들도 과잠은 ‘체육과 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라고 말했다. 또 “요즘엔 ‘과잠’에 학과 이름을 새겨 넣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부분 ‘과잠’을 과에서 제작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의 대부분 ‘과잠’은 등판에 학과명을 새겨 넣어 어느 학과의 ‘과잠’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색깔 또한 학과마다 달리하여 차이를 두고있다. 한편으로는 ‘과잠’에 새겨진 이니셜을 통해 학번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각 학번마다 과잠의 색깔을 달리해 구별하기도 한다.

 

'과잠'은 야구잠바? 아니다!

  두툼한 재질의 야구잠바 형태로 학과와 학번 등의 이니셜로 장식된 과잠, 아주 표준적인 과잠의 모습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과잠’의 의미 그리고 그 모습도 점차 변화하고 있는 추세다.
  작년 10월, 우리 학교 총학생회는 학교를 대표하는 ‘돕바(두툼한 외투를 의미하는 ‘Topper’의 일본식 표기)’를 제작해 학우들을 대상으로 수요를 조사하고 직접 배부했다. ‘돕바’는 허리 밑으로 내려와 엉덩이를 가려주는 옷으로 롱패딩과 비슷한 종류이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이현상 학우는 “학내 커뮤니티에서 ‘돕바’와 관련된 학우들의 요구를 확인했다. 이에 학교를 대표할 만한 ‘돕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며 ‘돕바’를 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학생회의 ‘돕바’ 제작이 추진되자 많은 학우들이 대나무숲과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호응을 보이기도 했으며 실제로 600벌 가량의 ‘돕바’가 제작 및 배부됐다.

 

'과잠'으로 하나되는 우리 

  우리 학교 06학번의 B씨는 “초창기에 ‘과잠’은 좋게 말하면 소속감, 나쁘게 말하면 선배들이 언제든지 지켜볼 수 있는 감시적 도구였다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학교에 ‘과잠’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에는 ‘과잠’이 학과 구성원의 소속감을 증대하는 동시에 위계질서 수단으로 활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선후배 사이의 칼 같은 위계질서가 점점 누그러드는 오늘날, ‘과잠’은 이와 같은 기능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팀플레이가 중요한 스포츠 분야에서 소속감의 증대나 시너지 효과를 위해 유니폼을 맞춰 입듯이 ‘과잠’이 학내 유니폼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는 순간

  한편, ‘과잠’은 학벌주의의 산유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한국일보는 경기도 소재 한 대학이 ‘과잠’에 학교 이름을 비롯해 그 어떤 이니셜도 붙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대학의 학생은 만약에 ‘과잠’에 학교 휘장이 박혀있었다면 오히려 더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과잠’에 이니셜을 넣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사례들에 대해 학벌주의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일각에서는 그저 차이를 두려했을 뿐인데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자격지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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