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판 : Kneel Before Your Queen

  케이트 블란쳇, 어쩜 이름도 케이트 블란쳇일까. 세상에 이보다 완벽한 존재가 있을까. 요즘 고민들이다. 토르 라그나로크를 봤고 덕질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졌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헬라의 모든 순간은 심장을 쥐어흔들기 충분했다. 이미 내 무릎은 박살났다. Kneel Before Your Queen.

  유독 헬라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는 단순히 케이트 블란쳇의 위대함만은 아니다. 죽음의 여신 헬라는 귀신같이 캐릭터를 잘 만드는 마블 유니버스의 최초 여성 빌런이다. 심지어 토르 라그나로크에는 발키리 역의 테사 톰슨까지 등장한다. 이들을 다루는 마블의 시선 역시 상당히 준수하다. 벗을수록 내구도가 높아지는 미디어 특유의 (거지같은) 여전사 의상도 없고, 여성의 신체 부위를 훑어 내리고 집중하는 장면도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여성 히어로와 여성 빌런이다. 개인적으로 헬라와 발키리 군단의 전투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테사 톰슨이 연기한 발키리는 공식 설정으로 바이다. 영화 전반에서 바이 설정이 두드러지는 장면은 없었지만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마블 유니버스에 성소수자 캐릭터가 등장했다. 테사 톰슨은 마블에게 여성 어벤져스를 만드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블랙위도우, 스칼렛위치, 가모라, 네뷸라, 발키리가 히어로로 나오고 빌런이 헬라라는 상상을 해보자. 상상만으로도 새롭지 않은가.
  사실 마블 유니버스의 변화는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다. 그 동안 수많은 마블 영화에서 블랙위도우가 어떻게 묘사됐는지 생각해보더라도 이 변화는 고작해야 한 두 편의 영화다. 그럼에도 이 변화가 너무 반갑다. 우리는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필요하다. 더 다양한 이야기를 노래하는 걸그룹이 나와야한다. 제발 여성 예능이 다시 시작해야하고 여성이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가 개봉해야한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와 목소리를 미디어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2005년에 보아는 <Girls On Top>을 발표했다. 노래에서 보아는 ‘내 모습 그대로 당당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2017년 트와이스는 내 맘이 열리게 두드려달라고 노래한다.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지상파에서 여성MC가 나오는 예능은 자취를 감췄다. 1년간 여성 주연 한국 영화는 열 손가락도 채 세지 못한다. 걸그룹은 더 많이 후퇴해 수동적인 모습만 노래한다.

  우리는 대체 어떤 여성상을 소비하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쓸 데 없는 글이었다.

곽효원 학우/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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