떫은 홍시

 

  일주일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열댓 개의 홍시가 담긴 박스가 거실 한 편에 있었다. 그리고 ‘홍시 먹을래?’라고 물어오는 엄마와 ‘아니’라며 고개 젓는 내가 있었다. 자라오면서 단 것을 안 좋아하게 된 것도, 싫어하게 된 단 음식 중 하나가 홍시인 것도, ‘너 홍시 좋아하잖아’ 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던 거다.

  잊고 있었는데 어렸을 적 나는 한꺼번에 서너 개를 앉은 자리에서 까먹을 만큼 홍시를 좋아했다. 그래서 매년 겨울이 시작할 때가 되면 감나무에서 떫은 감을 따다가 마루에 줄 맞추어 홍시 만드는 일이 아빠에게는 딸을 위한 연례행사였다. 엄마, 아빠에게 홍시 계절을 기다리는 어린 딸의 모습의 내음을 찾아주는 것 같아서, 더 솔직히 말하면 더 이상 안 좋아한다고 하면  엄마, 아빠에겐 아직도 생생한 기억을 잊어버릴 정도로 내가 커버렸다는 서운함을 가져다 줄까봐 나는 여전히 홍시귀신인 척하며 맛있게 먹었다.

  마냥 비리기만 했던 순대 간과 갈치조림을 먹을 수 있게 된 나는 홍시라던가, 고구마전이라던가, 안동 식혜 같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게 되었고, 나는 아빠와 엄마의 기억에서 홍시가 되어가는 감을 얌전히 기다리지 못해 몰래 찔러보던 적, 제사 음식 중에서도 고구마전만 쏙 골라먹었을 적, 밥 먹고 나면 꼭 식혜가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적의 기억은 흐릿해졌고, 저 편에서 누가 들춰내주지 않으면 걸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커버렸다.

  한 쪽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들은 장롱 위에 소복이 쌓인 하얀 먼지처럼 그저 허공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직 익지 않은 홍시를 먹은 것처럼 떫다.

BOSHU PR팀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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