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율성을 회복하자!

  불교 용어 중에 법인(法印)이란 불법이 참되고 부동 불변함을 말하는 것으로 ‘변함없는 진리’를 상징한다. 그 법인 중 하나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 있다. 제행무상이란 우주의 모든 사물은 늘 돌고 변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러 있지 아니함을 말한다. 꼭 이 불교 용어를 들지 않고서도 세상이 변화하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며, 그러한 변화야말로 ‘변함없는 진리’이자 숙명처럼 여겨진다. 그리하여 “살아남는 종(種)은 강한 종도 아니고, 똑똑한 종도 아닌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라는 찰스 다윈의 말처럼 마치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듯이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에 적응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인공 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등 초지능(superintelligence)과 초연결(hyperconnectivity)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우리의 경제, 사회 전반뿐 아니라 교육계에도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의 대학들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창의·융합교육을 강화하고 그에 따른 학사제도를 개편하는 등의 움직임은 그러한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의 변화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당연한 것일지라도 지금과 같은 변화의 방향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그 변화가 자율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당위성이라는 미명하에 강제적, 획일적으로 진행될 때 더욱 그러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대학은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구조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교육부의 통제를 받아 왔고, 그 결과로 대학의 자율성은 심각히 훼손되었다. 입학 정원 감축과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대학들이 교육부의 평가에 매몰되어 본래 대학의 역할보다는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 선정에만 매달리게 되었고, 수치만을 강조하는 획일화된 평가 방식은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기 위한 비정상적 교수직을 양산하고,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무조건 통폐합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대학의 서열화는 더욱 심화되고 서열에서 밀리는 대학의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학벌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교수 역시 각종 재정지원 사업과 교육부 평가에 부응하기 위한 대학의 자구책에 동원되면서 교원업적평가라는 제도 아래 등급과 석차가 매겨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 훼손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진리 탐구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로운 학문 연구와 전수가 대학 본연의 목적이며 소명이고, 대학이 그러한 소명을 다할 때 사회와 국가의 경쟁력도 그만큼 제고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사회적 필요에 따라 분화되었던 학과가 이제는 다시 통합되거나 폐지되고 있다.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측면에서 대학이 국가와 산업계의 요구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당위성과 필요성이라는 명분하에 스스로 자율성을 잃고 정부의 통제와 기업의 논리에만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진리 탐구와 자유로운 학문 연구라는 대학의 기본 이념과 전통은 변함없이 유지해야 한다. 이제 대학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정농단’의 주체인 전직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1,500만의 작은 촛불의 힘과 같은 그 자발적, 민주적 힘을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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