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소비자가 되기 위한 비판적 시각

 

  #휴일 오후 대학생 지현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한 패스트푸드점에 간다. 패스트푸드점에 새로 생긴 무인주문기계를 이용해 주문한 뒤 자리에서 기다린다. 잠시 후 주문번호가 화면에 뜨면 음식을 받아온다. 식사 후 지현씨는 생긴 쓰레기와 남은 음료를 지정된 쓰레기통에 분리해 버리고 가게를 나온다.

#대학생 인경씨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한 카페에 간다. 인경씨는 본인이 원하는 커피를 주문해 결제하고, 카페직원은 영수증과 진동벨을 준다. 자리에서 기다리던 인경씨는 진동벨이 울리자 직접 커피를 받아온다. 커피를 다 마신 후 인경씨는 남은 음료, 컵홀더, 그리고 컵을 분리해 버린다.
*해당 내용은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대학생 지현씨나 인경씨처럼 무인주문기계를 통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기계의 안내에 따라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과 주문한 음식을 직접 받아오는 것, 그리고 나오기 전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는 것 모두 무급으로 하는 ‘일’,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이란

  그림자 노동이란 과거 서비스업 노동자가 돈을 받으며 했던 일이 소비자가 돈을 주고 직접 하는 형태로 바뀐 것으로, ‘셀프’라는 그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에 대해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보수를 받지 않고 생산성에도 기여하지 않으며 오직 임금노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림자로서 존재하는 노동”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우리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휴일에도 ‘일’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의 사례인 '셀프 계산대'의 모습 사진/윤지원 수습기자

그림자 노동의 현재

  그림자 노동은 우리 삶 가까이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림자 노동의 증가는 현재의 일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 학교 학생생활관 편의점 ‘이마트24’에는 아르바이트가 고용된 계산대 옆에 셀프 계산대가 추가로 설치됐다. 셀프 계산대의 무인카드결제기의 안내에 따라 리더기로 바코드를 찍고 카드를 읽혀 학우들이 직접 계산을 하고 있다. 학생생활관 편의점 셀프 계산대를 이용해 본 우리 학교 A학우는 “새로운 경험이라 신선했다”며 “해당 과정이 노동이라고 느껴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B학우는 “아르바이트가 고용된 계산대의 줄이 길 때만 이용한다”며 “계산시간만 따진다면, 무인 계산기기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게 모르게 현대인의 삶에 스며든 그림자 노동은 생활을 보다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일에 더욱 노출되고, 여가시간은 줄어든다. 줄어든 여가시간조차 그림자 노동을 통해 할애되고, 더 바빠진 생활에 지쳐간다. 우리 학교 경제학과 윤자영 교수는 그림자 노동의 발생과 소비자의 시간 할애는 “구매력이 낮은 소비자들은 셀프서비스가 포함되면서 가격이 낮아진 상품을 선택하게 되고, 경쟁사회의 기업은 그림자 노동의 비중을 늘려 상품의 가격을 낮추는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소비자들은 소비에 더 많은 시간투자를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가용시간이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그림자 노동의 역습」의 저자 크레이그 램버트는 “그림자 노동은 반사회적 경제패턴에 포함되며, 기술의 발전과 함께한다. 서비스 업무가 그림자 노동을 하는 고객, 자동화 기계에 전가되면 결과적으로는 사회 공동체를 약화시키며 인간을 ‘고립된 자급자족 상태'로 만든다”고 말한다. 더 이상 카페직원과 “휘핑크림 많이 올려주세요”와 같은 대화를 하며 한번 웃게 되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림자 노동의 사례인 'Self Bar'의 모습 사진/윤지원 수습기자

그림자 노동과 DIY

  일부 소비자는 그림자 노동을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일명 DIY(Do It Yourself)로 소비자가 생산과정에 스스로 참여하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자동차 튜닝을 즐기는 소비자들은 튜닝을 위해 일일이 부품을 주문하고, 매뉴얼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자신만의 자동차를 조립한다. 소비자들은 이곳에 투자하는 시간을 뿌듯하게 여기며 취미생활로서 즐기기도 한다. 가구브랜드 이케아는 싼 값에 반제품을 판매한다. 소비자들은 이케아에서 반제품을 구매하고, 개인의 기호에 맞게 직접 조립하며 맞춤형 가구를 생산한다.

 

그림자 노동의 미래

  우리는 증가하는 그림자 노동을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신문물(무인카드결제기 등)에 신기해하며 셀프 서비스를 나서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 노동이 확산돼 새로움을 넘어 불편함과 위험요소가 증가할 날이 올 수 있다. 윤 교수는 “그림자 노동 중 사고가 생길 경우 책임소재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의 사회에서는 식당에서 음식을 서비스업 노동자가 대신 가져다줬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생긴 사고에 고용주와 노동자 또는 소비자과 해결을 했다면, 그림자 노동 중 소비자와 소비자사이에 사고가 생길 경우 사고의 책임이 누구한테 얼마나 있는 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현재 대학생들의 삶에서 그림자 노동은 새롭게 등장한 하나의 문화인 냥 취급된다. 하나둘씩 기계를 이용해 자동화되는 일상에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한다’며 경계하면서 셀프 서비스라는 가면을 쓴 그림자 노동에는 무감각하다. 사실 과거 무급노동이라고 노골적으로 불리던 그림자 노동은 이미 우리 삶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몇몇 소비자들은 가격인하라는 보상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이 가격인하를 위해 노동을 떠넘기는 것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우리는 보다 질 높은 소비를 위해, 그리고 침략당하는 우리의 여가생활을 지키기 위해 그림자 노동의 뒤편에 숨은 그림자를 인식해야 한다. 덧붙여 똑똑한 소비자가 되기 위해 기업의 새로운 꼼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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