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추억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대한 뉴스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한 카페 주인을 떠올린다. 그 카페 주인은 동양에서 온 낯선 사람에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친절을 베풀었다. 내가 대학원 박사과정에 다니던 2004년의 어느 더운 여름밤이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나는 바르셀로나의 호텔 근처 바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비행기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있었겠지만, 마치 한 사람의 인생처럼 여행도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먼저 가서 여행을 하다가 공항으로 나를 마중오기로 한 대학원 동료가 공항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우리가 함께 묵을 작디작은 호텔을 통해야만 하는데 호텔 직원은 모른단다.
  나는 잠시 기다리다가 택시를 탄 뒤 택시기사에게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넸다. 택시를 내린 후 두 번째 문제가 생겼다. 그 주소지에는 어디를 봐도 호텔 같은 건물도 없고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공중전화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거리를 따라 두 블록쯤 내려가다 카페를 발견했는데 들어가서 물어보니 공중전화가 있었다. 주인 남자에게 지폐를 거슬러 달라고 해서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동료는 아직 호텔로 돌아오지 않았다. 호텔의 위치를 알아야 하는데 그곳에 처음 온 나에게 제대로 설명이 될 리가 만무했다. 더군다나 두 사람 모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참 난감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더니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데려다 줄 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아직 서빙이 채 끝나지 않아서다. 결국 나는 아파트 건물의 두 층을 숙박업소로 쓰고 있는 초미니 호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스페인에 오자마자 나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따뜻하고 친절할 것이라는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혔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간 유럽 여행 중 고작 3, 4일간 머물렀던 바르셀로나에 대한 추억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바르셀로나를 주도(州都)로 하는 카탈루냐의 독립에 관한 주민투표 소식이 하루걸러 한 번씩 뉴스를 장식한다. 카탈루냐의 주의원들이 결국 10월 1일에 스페인으로부터의 분리 독립에 관한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스페인 경찰이 이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충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이 사태는 카탈루냐 수반이 독립을 선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미 몇 달 전 테러로 인해 아픔을 겪었다. 이슬람 테러범이 카탈루냐 광장 인근의 거리에서 밴으로 시민들과 관광객들을 무참히 치어 무려 백여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본다.
  좋은 기억들은 특정 지역, 특정 국가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게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들 하나보다. 이렇게 생긴 관심은 더 많은 지식을 찾아 얻도록 하는 마중물이다. 대다수 대학생들에게 해외여행은 감당하기 어려운 사치일 수 있다. 그게 안 된다면 우리 학생들이 최소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애써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에서 오락 프로그램이 아닌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정성 정도는 들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 더더욱 좋다. 번역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난 항상 세상지식과 배경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그런 지식이 필요하다. 사전만 가지고 공부하면 언어도, 번역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 그 언어 기호가 가리키는 실제 세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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