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기다리며
터질 것이 터졌다. 대학가와 직장,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물들인 일명 ‘단톡방 성희롱’ 파문이 우리 학교까지 넘어왔다. 제보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특정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심지어는 범죄를 연상시키는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혐오 표현으로 얼룩진 단톡방의 치부가 여실 없이 드러났다. 기사를 쓰기 위해 단톡방 내용을 읽는 행위 자체가 고역이었다. 내용을 읽으면서 수치심이 들 정도였다. 남학우들의 단톡방에서 여학우들은 과일인 ‘거봉’에 빗대어졌고, 상품처럼 소비됐다.
단톡방에서 행해진 ‘사생활’로 넘기기엔 사태가 심각했다. 기사를 써내려가며 한참 고민했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해당 사건이 학생들에게 제대로 전달 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기사 마감을 마치고도, ‘제대로 전달한 게 맞았을까’를 묻고 또 물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해 학우들은 “사람 만나는 일이 두렵다. 친하게 지내며 믿었던 사람이었던만큼 충격이 크다”고 호소했다. 가해 학우 인터뷰에서는 “남자들끼리 야한 농담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표현이 격해진 것 같다. 전체 맥락상 성적인 의도로 한 발언들은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곡된 성의식과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 사회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해당 발언이 성희롱이 맞는건가요?”라는 기자의 아둔한 질문에 “성희롱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범죄로 규정되는 발언만 피하면된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장난 혹은 실수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이 포장되는 순간 피해자의 고통은 사소화된다. 또한 폭력적인 언행이 일상적으로 행해지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함께 공감하고 바꿔나가야한다”라는 이야기는 기억에 깊이 남는다.
‘악습, 똥군기, 성희롱’
충대신문 편집국장은 해마다 바뀌었지만, 학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번 일이 단순한 ‘이슈’ 혹은 ‘가십거리’로 그치지 않아야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공론화와 더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학우들의 관심, 학교 차원의 단호한 처분과 대처가 필요하다.
밝히지 못했을 뿐 우리 주변에도 피해 학우들처럼 고통을 받는 학내 구성원들이 있을 것이다. 지난 1월 한 대학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남자들만 있는 그룹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성희롱이)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가해자들에게는 농담, 혹은 실수로 치부될 수 있는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단톡방을 통해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단톡방 성희롱은 단순한 모욕을 넘어 명백한 범죄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잘못된 일에 대해 잘못됐다 말하는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