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을 읽어야 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독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대형 서점의 도서 판매 상황을 보더라도, 가을이라고 하여 판매율이 그다지 향상되는 것 같지 않다. 가을은 이제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독서와는 무관한 계절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한 시절, 가을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바람은 이제 철지난 낭만이 되어 버렸다. 이제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기가 천연기념물을 보는 일보다 더 어려워졌다.
  통계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독서 시간은 6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주요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최하위 그룹에 속하는 수준에 속한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 활동이 세계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회학자는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어떤 교육학자는 입시에 시달린 젊은이들이 책을 멀리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어떤 출판업자는 재미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독서 인구의 감소는 이러한 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동네 서점들은 모조리 문을 닫았고, 대형 서점들도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책의 유통망까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 해가 멀다 하고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등장하는데, 몇 년이 지나도 100만부 이상 판매고를 기록한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영화 한 편 보는 가격이면 시집을 한 권 살 수 있고, 거기에 조금만 더 보태면 소설책이나 교양서적을 한 권 살 수 있지만, 그런 용기(?)를 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책은 이제 현대인들의 문화와 여가 생활의 핵심적 매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책의 소중한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책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책은 인간다운 삶을 고양시키는 데 가장 유리한 매개체임에는 틀림없다. 문장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유와 감각을 통해 자아를 확장하고 상상의 진폭을 넓히는 데 책보다 좋은 것은 없다.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이나 정서는 간접 경험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기화 하는 과정에서 다른 매체보다 창의적 요소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책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할 여지를 남겨둔다. 책의 이러한 특성은 가령 독서와 강연, 혹은 영상 매체와 비교해 보면 그런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난다. 가령 강연도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받는 방식이지만, 그 과정에서 강연자의 주관적 해석이나 과장된 포즈, 격앙된 분위기에 노출되기가 쉽다. 그런 요소들은 자연히 깊은 사유와 상상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영상 매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떤 지식이나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영상은 청중들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상상하는 것을 방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독자의 상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수용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 시청자의 상상은 최소화된다. 시청자의 역할은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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