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양은 새벽 기도를 하고 돌아오던 중 의문의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후 납치됐다. 손과 발이 꽁꽁 묶인 채 눈을 뜬 A양을 납치한 건 전 남자친구 B씨였다. A양은 B씨가 술에 취해 잠이든 틈을 타 몰래 도주를 시도했지만, 멀리 못 가 붙잡혔고 B씨는 무차별적인 주먹질을 휘둘렀다’
  위의 사연은 작년 7월에 방영한 JTBC 드라마 ‘청춘시대’의 에피소드다. 여자친구의 이별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한 남성이 여성을 납치해 폭력을 행한 것이다. ‘데이트 폭력’과 ‘이별범죄’. 과연 드라마 속 에서만의 이야기일까?

 

협박·스토킹·성폭행 등 연인 간 데이트 폭력 수위 높아져

  경찰청이 밝힌 데이트 폭력 발생현황을 보면 2012년 7536건, 2013년 7189건, 2014년 6675건에서 2015년 7692건, 지난해에는 8367건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 2011년부터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숨진 사람이 233명이나 될만큼 폭력의 강도도 세다. 이 같은 수치는 데이트 폭력으로 숨지는 사람이 한해 평균 46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다양한 양상의 데이트 폭력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데이트 폭력이나 유명 연예인의 폭력 사례에서 보듯이 연인 사이에서도 폭력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사소한 다툼이나 트집을 잡아서 무자비한 폭행을 일삼고도 연인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데이트 폭력이란 교제 중인 연인이나 배우자가 강압적, 폭력적 행동으로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폭력적인 행동’이란 상해나 성추행, 욕설 같은 신체적·심리적 학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옷차림을 제한한다거나 누구랑 있는지를 감시하는 ‘행동통제’도 폭력의 일종이다. 단순한 신체적 학대뿐만 아니라 언어적, 감정적, 성적, 경제적 학대 모두 데이트 폭력에 속한다.
  경찰청 통계에서도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5년 7692건에서 지난해 8367건으로 증가했다. 지난 5년간 발생한 데이트 폭력 사건 중에는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도 467건에 달했다.

 

급증하는 이별 범죄

  이별범죄란 연인 또는 배우자의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해 저지르는 범죄를 일컫는 말이다. 과거에도 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살해하거나 구타하는 등 이별 통보가 원인이 된 범죄가 있었으나 최근에 그 빈도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보복성 '이별범죄'에 대해 잘못된 가부장적 인식 아래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점 등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7월 1일에는 청주지법 제1형사부는 ‘헤어지자’는 말에 격분해 동거녀를 살해하고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30대 남성에 대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연인 사이의 '데이트 폭력'과 '이별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스토킹, 사진ㆍ동영상 유출부터 폭행, 살인까지 갈수록 잔혹해지는 '이별범죄'에 젊은 세대들은 '안전하게 이별하는 법'을 SNS나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안전 이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데이트 폭력 발생 현황(경찰청 자료) 인포그래픽/ 노연주 기자

나를 지키는 방법 '안전 이별'

  안전이별이란 사귀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스토킹·감금·구타·협박 없이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이별범죄가 우려되는 상대에게 갑작스러운 이별통보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별을 유도하는 것이다.

< 안전 이별 수칙 >
이별 후 전 애인의 범죄에 노출되 는 경우가 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는 보복을 당하지 않게 이별 하는 방법이 적힌 이른바 '안전이 별 수칙'이 떠돌고 있다. 데이트 폭 력이나 이별 범죄가 우려되는 상대에게 현명하게 이별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전 한다.

① 단둘이 있는 공간에서 이별 통 보는 피하고 공공장소를 택할 것.

②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가한 가 해자와 접촉하지 말 것.

③ 이별에 있어 단호한 태도로 거 절 의사를 분명히 밝힐 것.

④ 이별 통보 후 가해지는 위협이 나 피해에는 법적 제재를 가할 것.

⑤ 이별 후 만나야 한다면 지인과 함께 나갈 것.

 

여성에게 자행되는 폭력 원인은 무엇인가?

  문진수 광주여성단체협의회 고문은 "연인 등 남녀 관계에 있어 동등함을 추구하는 인식이 자리잡혀야 되는데 지금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며 "연인에 대한 보복성 범죄의 기저에는 그릇된 인식과 교육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희선 대전 여민회 한부모가족지원센터장은 “데이트 폭력 및 이별범죄와 같은 문제가 증가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이유만이 아닌 다양한 메카니즘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릴적 부모로부터의 친밀한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개인적, 가정적 경험과 문제를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회가 원인 중 하나”라며 “오랫동안 사회적 약자였던 여성이 그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센터장은 “불균형한 연인관계에서 폭력이 발생하기가 더 쉽다”고 경고하며 “평등하고 건강한 연인관계를 위해 일상적인 요소부터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나로부터의 실천’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 국가적 지원책 필요

  현재 우리나라는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지자체 차원의 체계적 도움이 절실하다.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폭력이 수 차례 반복되고 난 이후에는 이미 심리적인 고통 등 피해 여성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난 후"라며 "데이트 폭력문제에 대해서는 사후 대처보다는 사전 예방으로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7월 24일부터 10월31일까지 '민생치안 확립 및 사회적 약자 보호'의 일환으로 여성폭력 근절 100일 계획을 추진 중이다. 사회적 약자 대상 강력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여성보복 폭력 등에 대한 대책으로 '여성폭력 근절 특별추진기간'을 지정해 집중 단속과 신고기간을 운영할   예정이다.
  서울시에서는 우선 8월 말부터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에게 신체적·정신적 치료비용과 형사·민사 소송으로 발생하는 변호사 선임 비용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번 지원책에 법률 상담과 법적 증거 확보에 필요한 경비도 포함시켰다. 또 피해자의 대응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지원 방안을 전국 차원으로 확대하는 등의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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