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혁명

김정숙 자유전공학부 교수

  개강을 앞두고 지난 8월 22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학교의 RC프로그램 학생들과 오사카 답사를 다녀왔다. 미래과학관을 포함하여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동지사대학과 백제 후손의 혼을 품고 있는 동대사와 오사카성 등을 둘러보면서 다른 문화와 삶을 경험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답사는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을 인식하고 미래 직업을 탐색하고자 기획된 점에서 생각할 주제가 많았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 혁명’의 도래를 선언한 이후, 4차 산업 혁명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은 2020년 이후 ICT와 제조업이 융합한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과 빅데이터 등이 주도하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일컫는다. 많은 국가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이 접목된 일상이 멀지 않은 듯 하다. 각종 정책이나 어젠다 설정에는 물론이고, 강의나 학술논문의 서두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될 정도로 이 용어는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오사카의 과학기술관에서 인간-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로 이루어지는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환호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미래는 가상현실(VR)이 실체화되는 노정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은 짙게 깔린 안개와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실체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듯, 과학기술의 물결이 어느 순간 예측하지 못한 파고로 우리의 삶을 뒤덮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상상도 해본다. 안개 속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우리 앞에 놓인 또 다른 과제이다.  

  답사 일정 중에 들른 고베항 ‘메모리얼 파크’는 글을 쓰며 거듭 떠오른 장소이다. 나에게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사건’이 하나의 가상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기억(기념) 공원’은 일본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된 1995년 발생한 고베 지진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편리와 실용성을 추구했다면 콘크리트로 덮여 매끈한 도로로 사용되었을 그곳은 자연재해의 위험성과 다시 일어날 지진을 대비한 안전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 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으로 현재와 함께하고 있었다.
  비단 이것은 자연재해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간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로 자책하고 낙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더 나은 변화로 이끌 힘과 방법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무지보다 더 위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며, 그러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 시대 자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안 부루마, 0년) 실패에 대한 복기와 성찰의 과정은 내적 변화와 인간다운 성숙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해석과 탐구의 노력은 무지와 편견을 극복하고 자기다운 주체로 살고자 하는 자기 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컴퓨터로 연결된 시스템뿐만 아니라 인간-자연, 그리고 나-또 다른 나로 연결된 관계 망에 대한 이해와 융합을 모색할 때 비로소 행복한 미래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 있는 자기 혁명은 미래로 떠밀리는 파고에 대비할 방파제가 되어줄 것이며, 뿌연 안개로부터 안전하게 빠져 나올 수 있는 탈출구로 안내해줄 것이다. 답사 이후 나에게 ‘자기 혁명’은 4차 산업혁명과 유의어 목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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