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 지원정책 벗어나 근본적 사회안전망 확립

  “벽을 기어 올라가던 그 덩굴 식물이 마치 예술인들의 안간힘을 쓰는 영혼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 월 7일 ‘새 정부 예술정책-예술인복지 정책 토론회’에서 연극배우 김운하 씨가 머물던 고시원을 방문한 날을 회고하며 한 말이다. 김운하 씨는 2015년 6월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도 장관은 고시원 앞에서 “예술인들이 평생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국가가 나서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의 예술인 사회안전망 논의로 이어졌다. 

  정부차원의 예술인 복지는 비교적 최근인 2011년에 시작됐다. 당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가난한 형편 탓에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정치계는 다급하게 ‘예술인 복지법’을 제정했다. 법에 따라 정부는 3년을 주기로 ‘예술인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표준계약서를 개발하고 보급했다. 또한 한국예술 인복지재단이 설립됐고, 재단은 창작준비금 지원 등 14개 이상의 지원 사업을 실시했다. 

  정부의 정책 집행은 결과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6.2%가 예술활동 수입이 없었다. 응답자의 50%는 겸업예술인이었고, 이들 중 83% 는 소득문제로 예술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인 복지법' 시행 4년, 갈길 먼 예술인 복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복지사업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예술인으로 등록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시행규칙이 정한 세부기준에 부합하다는 것을 인증 받아야 된다. 이 과정이 복잡하고 일부 장르에 있어서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비판이 있다. 한국뮤지션유니온 이씬 정석 교육정책팀장(이하 이씬 정석 팀장)은 “몇 년째 홍대 라이브클럽에서 한 달에 두세번 씩 공연을 하는 인디뮤지션이 음원 한 장 발표해본 적 없다는 이유로 탈락했다”는 사례를 들며 “뮤지션유니온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제출 서류 준비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 하거나 제출하고도 지원을 못 받았다”고 밝 혔다. 충남작가회의 류지남 지회장도 “필요 이상으로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다”며 “건강 보험증에서 아이들 서명까지 받아야 하는 경우는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창작지원금 등의 사업 수혜 예술인 선정방식도 예술인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조재현 공동부위원장(이하 조 부위원장)은 “현행 창작 지원은 서로 경쟁하듯이 룰을 만드는 형태의 지원이라 결국 인맥과 학벌 혹은 여타의 관계라는 한계를 가진다”고 비판했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지원사업을 악용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도 밝혀져 수혜자 선정과정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근본적으로 ‘예술인 복지법’의 예술인 사회 보장에 대한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이하 이 교수)는 한 정책 세미나에서 “창작활동의 특수한 조건들이 사회적 공감을 얻고, 이를 전제로 창작활동을 위한 기본 생존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예술인 복지법은 목적 조항에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장하겠다는 실질적인 내용은 기존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한 보장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도입, 졸속추진 우려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예술인 고용보험 정책을 발표했다. 프랑스의 ‘엥테르미탕 (Intermittent du spectacle)’과 같은 예술인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엥테르미 탕’은 공연예술 등의 분야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에게 실업기간동안 임금을 보전해주는 프랑스의 실업보험제도이다.  

  예술노동의 특수성 때문에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예술인들이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 동안 경제적 어려움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 도입 배경으로 제시됐다. 다수 예술인들은 대법원 판례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김난희 노무사는 “예술인들이 고용보험을 통한 실업급여의 혜택을 못 받고, 재해를 입는 경우에도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을 큰 틀에서 자영업자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고용보험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의무적으로 함께 가입하여 각각 과세표준의 0.65%를 보험료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이에 더해 추가징 수금을 낸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예술인 고용보험은 임의가입 형태이며, 보험료 전액을 예술인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에 대해 김 노무사는 “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영역에 해당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인의 과도한 부담을 우려해 문체부는 보험료의 50%를 지원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정부는 2019년에 이 제도가 정착되는 걸 목표로 한다. 

  예술계는 정부의 계획이 ‘예술인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이씬 정석 팀장은 “여러 형태의 불안정 고용, 계약으로 종사하는 ‘예술인’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예술인을 고용한 극단, 무용단, 기획사 등의 의무가입 조항이 없다”는 것을 한계점으로 봤다. 일례로 프랑스의 ‘엥테르미탕’은 의무가입 방식이며 2014년 기준으로 실업보험 부담비율을 총수입의 12.8%로 정했는데, 고용주가 8.0%, 예술가가 4.8%를 납부한다. 고용주가 약 2배 정도 더 납부하는 것이다. 

  문체부가 도입을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 부위원장은 “프랑스는 그 제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고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정도, 자본 구조 등이 밑바탕 된 상태에서 탄생한 구조”라며 “엥테르미탕을 가져올 때 한국의 현실에 맞는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씬 정석 팀장 은 “박근혜 정부 때 졸속적으로 일용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에게 시행하던 고용보험, 산재보험 형태를 그대로 가져와 예술인 고용보험을 입법화하려했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논의되어 왔던 내용을 재탕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예술인, 연대해 행동하다

  정부의 사회보장제도 도입 의지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목소리가 많다. 충남작가회의 류지남 지회장은 "프리랜서 예술인도 본인이 희망할 경우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책 입법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의 의견이 반영될 것이 요구된다. 이 교수는 "엥테르미탕은 수십 년 동안 국가적 의제 설정, 노사 간 협상, 사회적 파장 및 논의 과정 등을 거쳐 만들어진 제도"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예술인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실천적인 행동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앞으로 예술인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씬 정석 팀장은 “최근 노동당 문예위원회가 개최했던 토론회에서 참여 예술단체들은 출판, 만화 등의 다른 문화예술장르조직들의 의견 까지 모아 ‘문화예술노동연대’의 이름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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