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민영(독어독문학과)

  대학가 근처에서 파는 저녁을 먹은 후 그 옆에서 프랜차이즈로 파는 칵테일을 마시고 가볍게 옷깃을 툭툭 털고 나서 헤어지기로 한 날. 친구는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했다. 학교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 애는 매일 아침 학교로 가는 아무것도 없는 나를 즐거워했고. 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도 똑같이 회귀하고야 마는 나는 스스로 무언가 만들기 시작한 그 애를 동경했다.
  그 애는 공장을 다니면서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담배 연기가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고 했다. 아마 공장에서 너무 오래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도 했고,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보여주는 친절함이 좋아서, 지나갈 때마다 묻어나오는 담배 연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지나칠 때마다 나는 숨을 참고 걸음을 서두르기 바빴고, 그 애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만족스러운 개구쟁이의 얼굴을 하면서 들이쉬고, 내쉬고. 그 애는 내가 맛보지 못한 그 공기를 음미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어쩌면 많이 달라졌나봐.”
그 애는 분명 그런 얼굴이었다. 우리는 점차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지고, 사랑해나가는 것들이 변해가면서 걸어가는 보폭의 넓이가 달라졌다. 조금은 조급했고, 불안했고, 방황하다가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기도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이 낯설어 보여서. 서로에게 가까스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연습을 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척을 하면서. 그게 최선인 줄 아는 삶을 애써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그 애가 춤추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길이 못내 좋아서 낄낄거렸다. 아무도 ‘예/아니오’로 나누지 못하는 회색을 걸어 다니면서 모래사장에 예쁜 그림을 그리는 일련의 동작들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어스름한 그 날 저녁, 우리 둘 중 하나는 술을 마신 익살맞은 얼굴로 오래오래 행복하겠다고 다짐했고, 나는 그 애가 눈을 반짝이는 순간이 좋아서 그냥 웃었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 사람의 얼굴은 때때로 초라하고, 밤의 그림자가 묻어 지저분해 보여도, 그 눈동자 안. 터져 나오는 불꽃놀이는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경쾌한 스텝을 닮아서, 톡톡 소리를 내며 밤하늘 위로 내가 있다고 소리치는 그런 애의 눈동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밤새 웃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 언제가 되어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는, 살아가는 그 모든 힘을 다하고 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버스에 앉아서 어느 곳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울었고, 해내는 그 무언가마다 실패하고야 말아서 한 번 더 울었다. 생각보다 별일 아닌 척하며 히죽거리는 건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런 나도 쓸모 있다는 듯이 귀여워해 줬다.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웃어도, 각자의 삶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게 선명하게 드러나는 일은. 획일적으로 걸어온 순간에 이별을 고하는 작업이었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이와 이대로 주저앉아 버리는 이. 무언가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사람과 그 무엇도 사랑하기를 포기해버린 삶. 얄팍하고 안일한 감정의 방향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과 기회를 뒤바꾸고야 마는 걸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고. 그 모든 순간을 사랑하기를 주저했다. 아무것도 가진 적 없는 사람으로 사느라 내 삶은 조롱을 닮은 회색빛이었고, 사랑하기에 내 삶이 가진 색깔은 너무 어두운 줄 알았다. 자기가 가진 걸 다 걸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과 헤어지면서, 우리가 다음에 교차하는 순간은 언제일지 고민했다. 이 땅 태어난 것이 실수였던 사람들은 꿈꾸지 않고, 빠르게 사라질 고민을 한다. 우리는 다 같이 죽어버리는 상상을 하고, 살아본 적 없는 그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는 곳에 따라 바뀌고, 우리는 그 무엇에도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의미를 찾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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