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는 한량대학교 노동과 4학년 권모양의 이야기다.
  2017년 3월 22일, 여자의 분홍 케이스 아이폰이 요란스럽게 알람을 뿜어냈다.

  ‘빨리 일어나! 남들은 부지런히 일어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9번째로 울리는 알람을 껐을 때, 여자는 개운치 않은 잠에서 일어나 퉁퉁 부은 얼굴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알림창 밑, 언뜻 보이는 그녀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인터넷에서 많이 볼법한 글귀가 써져 있다. ‘짧으면 80, 길면 100년을 사는 인생인데 좌절할 때라고 하기에 20대는 이르다.’ 여자는 눈을 껌뻑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뜨고 감고 또다시 뭉그적거리기를 반복하다 몇 분 뒤에 일어섰다. 여자의 집 앞 하천에서 물고기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여자가 학교를 가는 길, 여자는 한 남자를 보면 기분이 헛헛하다. 남자는 늘 길 위에서 등에 배너를 매고 오랜 시간 서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 보면 누가 어디에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어. 배너에 남자가 매달린 건지. 남자가 배너를 매단건지.’ 당신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엇을 배웠는가? 문득 여자는 어젯밤 쓰다가 만 자기소개서 항목을 떠올렸고 그런 자신에 놀라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혼이 나간 채로 수업을 다 들은 여자는 도서관으로 가서 노트북을 켜서 자소서 칸에 커서를 뒀다. 갑자기 푸석하던 여자의 눈이 말똥말똥해지면서 생기가 돌았다. 입술은 바싹 말라있고 눈은 반짝이니, 기괴한 표정임에 틀림없었다. 여자는 1000자 이내로 써야하는 자소서 칸에 아무런 말이나 갈기고 또 갈겼다.
  생산적인 일이라고 함은 비생산적이지 않은 일. 내가 오늘 아침 했던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린 일은 생산적이지 않은 일. 어떤 남자가 배너를 매달고 서있는 것은 돈을 버는 일. 그건 생산적인 일. 남자가 밑을 보며 시간을 때우는 일은 비생산적인 일. 그러면서도 생산적인 일. 사람에 배너를 매달게 하게 하는 일. 사람이 배너가 되는 일, 생산. 비생산. 일…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