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나는 그다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왔다. 생각, 좋아하는 음식, 취미, 특기, 각종 취향이 주변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라는 말을 항상 듣고 살았다. 하지만 그 어떤 평범하지 않음도 그 동안의 내 삶을 괴롭히지 못했다. 적어도 내가 사춘기를 지나기 전 까지는….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삶은 의무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가거나 취업을 하고 군대에 가기도 하며 자신의 짝을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키우고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으레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살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성장이 더딘 나는 또래 남자애들에 비해 사춘기가 다소 늦게 찾아왔었다. 친구들이 서로 자신의 몸을 자랑하는 것처럼, 나도 당연히 그러한 어른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는 것은 기쁨이 아닌 어딘지 모를 생리적인 불쾌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뒤쳐지는 것 같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빨리 키가 크고 싶었고, 목소리도 어른스러워졌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지 그러한 변화들이 실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이러한 당혹감과 불쾌감을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겪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다가 물어봐도 다들 한 때 그러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과 불쾌함을 애써 속이며 그렇게 어딘가 잘 맞지 않는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억지로 우겨 넣기 시작했다. 누구나 평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평범함을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으뜸인 사회에서 나는 결국 스스로를 군대에 보내고 나서야 내 삶의 무엇이 삐걱대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난 여자였으니 남자로 사는게
평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나는 나의 평범함을 되찾기 위해 결정을 해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절대로 평범해질 수 없었다. 나는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도, 체형도, 얼굴도 가질 수 없으며, 여성으로서의 유년기 기억도 없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닮은 아이를 가질 수도 없다. 여성으로서의 사회적 삶의 영위는 삶이 제 자리를 찾은 듯 마음의 평온을 찾아 주었지만, 동시에 평범한 여성이 될 수 없는 영원한 결핍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평범함의 결핍이라는 족쇄를 걸고 행복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계속해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수많은 갈등과 고민의 시간을 거쳐서 이윽고 한가지 질문에 이르러서야 족쇄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평범함의 결핍들이
나를 여성으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가?”
대답은 “No”였다.
“그럼 나의 그러한 평범하지 않음이
나를 불행하게 하는가?”
역시 대답은 “No”였다.

 스스로가 생각한, 그리고 사회가 말하는 당연한 삶과 행복에서 나를 분리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소망하는 것을 가질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남들은 다 가지고 것이라면 억울할 수 도 있고 어쩌면 불행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니 말이다. 여전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해 질 수 있다. 평범하지 못한 것이 이상하고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면 대체 평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에 당연히 그래야 하는 삶은 없다. 아무런 굴곡이 없는, 보통 사람의 삶과 당연한 가치는 결국 모두가 바라는 이상이고 허상이다. 사람의 본질은 ‘다름’이다. 멀리서 보면 깔끔하게 뻗어있는 지평선도 그 자리에 가서 보면 수많은 굴곡으로 이루어져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함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퀴어라고 해서 그 다름의 의미가 다르지 않다.

 나는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함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한 가지 단순한 결론을 눈앞에 두고도 너무나 멀리 돌아왔다.

평범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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