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단지 공휴일이라 좋아하는 건 아니죠?

 

  3‧1절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로 평가받는다. 이는 3·1운동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의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중략)… 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3·1절의 의의가 잘 나타나 있다.
  일제의 철통같은 무단통치를 뚫고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전개된 3·1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분명한 거부와 문화적, 역사적 민족 개념에 기반한 이상적 국가 건설이라는 지향이 한국 민족 개개인에게 뿌리 내리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비록 3·1운동을 통해 일제 식민 통치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3·1운동은 비로소 ‘한국 민족을 한국 민족으로 각성시킨 것’이다.
  3·1운동 이후 활동한 대부분의 독립 운동 세력은 3·1운동을 자신들의 모태로 간주했으며, 독립 운동의 역사적 당위성과 독립 운동 활동의 역사적 논거로 3·1운동을 꼽았다. 따라서 매년 이 날을 기념하면서 독립을 향한 의지를 새롭게 한다. 1920년 3월 1일 상해 올림픽대극장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주최한 제1회 3‧1절 기념식에서 안창호는 “과거 일 년 간 일인은 이날을 무효화하려 하였고, 우리는 이날을 유효하게 하려 싸웠소. 일인의 최대 문제는 이날을 무효로 돌리는 것이고, 우리의 최대 의무는 이날을 영원히 유효하게 함이외다. …(중략)… 그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작년 3월 1일에 가졌던 정신을 변치 말자 함이요”라고 연설했는데, 이는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모든 세력들에게 3·1운동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적절히 함축하고 있다.
  ‘한국 민족을 한국 민족으로 각성’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던 3·1운동은 해방 이후에도 전 민족적으로 기념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특히 1946~1948년까지 해방 정국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다투었던 각 정치 세력은 자신들이 3·1운동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3‧1절 기념식을 자신의 주도로 치르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이 제정 및 공포되면서 3월 1일은 ‘3‧1절’이라는 명칭으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국경일이 됐다. 매년 3월 1일에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를 비롯해 광복회와 독립 유공자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식을 거행한다. 또 각 지역별로 1919년 3·1운동 당시 각 지역 만세 운동 광경의 재현을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를 열기도 한다.
  지난 3월 1일, 3‧1절의 의의를 알지 못한 채 단지 공휴일이라 좋아했던 학우가 있다면 이제는 3‧1절의 의의를 머리와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그리고 과거 열사의 헌신적인 행동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3‧1절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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