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왜 글을 쓰냐는데 - 김다영

  초등학교 2학년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한테 가장 큰 꾸지람을 들었던 때가 그때다. 집에서 엄마랑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제집을 푸는 데 내가 모르는 문제가 하나 나왔다. 그래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빈칸을 보고 엄마는 문제의 답이 무엇일 거 같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엄마가 묻고 또 물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도 안 뗐다. 왜 그랬었지? 몰라서 그랬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할 말이 없어서 대답을 안 했다. 엄마는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화를 내셨다. 무척 답답하셨을 거다. ‘왜 갑자기 얘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나’하고.

  정말 당시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몰라요'하면 끝나는 건데, 무조건 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정적인 사람이었고, 말 없는 사람이었다. 점점 자라서 스스로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라는 거, 글이라는 거, 앵무새처럼 떠들고 적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런 언어들은 금방 날아가 버린다.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남길 필요가 없다. 반대로 내가 동의하는 생각이든 아니든, 글에 쓰는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면 기억에 남는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내 생각에 자극을 주니까. 글이 살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짧게든 길게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할 말이 생기고, 주변 사람한테 말을 걸고 싶은 주제가 생기니까.

  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면 아무 글도 쓸 수가 없다. 고민하는 게 없으면 쏟아낼 말이 없어진다. 동시에 나는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가수 김윤아는 ‘음악을 한다는 것은 종종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일’이라고 했다. 글을 읽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자각하는 행위이고, 글을 만들어 쓰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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