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학문하는 자들의 책무, 대학의 존립 근거

박수경 교수(행정학부)

  아직 중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1439년, 프랑스 국왕 찰스 7세는 어느 봉건영주도 국왕의 허락 없이 징세할 수 없다는 칙령을 반포한다. 이는 국가의 실체적 위상과 권한을 보여주는 상징적 근거가 된다. 여기에 역할을 더한 것은 대학이다. 13세기의 대학에서 법학자들은, 통치 및 행정적 권위가 국왕에게 위임되어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국가가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봉건영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하는데 기여한다. 이후 15세기에서 18세기는 절대왕정과 중상주의, 그리고 패권주의라는 시대적 특성과 한계를 거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에 대한 신념 또한 대학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신민(subject)'이 아닌 ’시민(citizen)'으로 구성되는 근대국가의 이념적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구성원들의 갈등과 노력의 결과이고, 한편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이념과 사회적 실체를 연결하기 위한 대학과 그 구성원들의 노력에 기인한 부분도 적지 않다.
  3월 중으로 예상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어느 쪽으로 결정이 되더라도 상당한 기간 동안의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법리적 판단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혼란과 갈등도 있겠지만, 그 보다 ‘특수한 개인’에 의한 ‘적절하지 않은 국정 개입과 사적 이익추구’가 가지는 의미와 그 비중의 차이가 다른 데서 오는 혼란이 더욱 클 것으로 생각한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무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갈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개인의 인식 또한 차이가 클 것으로 본다.
  라틴어에서 정의(justitia)는 법의 행위(practice of jus), 바른 행위(just practice)를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적 정의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게 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칸트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주요 근거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면서, 이성을 통해 보편적 윤리기준을 공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존 롤스는 능력조차도 사회적 구조 속에서 정의되고 혜택 받는 것이기 때문에 성과의 절대적 귀속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버드의 철학과에 재직하는 샌들(Michael Sandel) 교수는 칸트와 롤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정의론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더 ‘개인의 자유’ 보다는 형평성에 기여하는‘공동체론’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샌덜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 기준을 강조하고, 칸트와 롤스의 ‘정의의 구체화 과정’에 대해서 동의하면서, 이에서 더 나아가 ‘공정한 배분’ 조차 기득권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염려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끼리 건강한 불일치(disagreement)에 대한 합의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서로 다른 윤리적, 도덕적 가치가 경쟁할 수 있는 사회, 도덕적 불일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처해 있는 문제이며, 극복해야 할 시험의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구성원들의 사회적․도덕적 불일치를 수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바른 행위의 기준’을 공유하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요구되는 때이다. 여기에 더욱 요구되는 것은 대학과 학문하는 자들의 책무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한 불일치’의 사유과정과 노력을 시대정신과 미래세대를 위해 재구성하고 구체화하여 다시 사회에 환원하는 것, 그것이 대학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이며 그 안에서 학문하는 자들의 의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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