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사랑해. 그런데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됐어. 우리 셋이 결혼할 순 없을까?” 2008년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주인아(손예진 분)는 두 남자를 모두 사랑해 양쪽 모두와 결혼했다. 동시에 여러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 자기 자신조차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가능한 일 일까?

인원수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띄는 '폴리아모리' 사진/프리큐레이션 제공

 

합법적 양다리?

  전 세계적으로 혼인은 대개 ‘일부일처제’로 이뤄지고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수용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일각에는 다자연애주의, 비독점다자연애 등으로 해석되는 ‘폴리아모리’를 지지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폴리아모리’는 ‘많음’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가 합해진 말로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의 양해 아래 각자 원하는 애인을 사귀는 행위를 말한다.
  ‘폴리아모리’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3명의 파트너들이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는 Triads, 한 명을 중심으로 두 명이 붙어 있는 형태의 Vee, 3명의 파트너들이 서로 그물처럼 얽혀있는 Triangle, 3명 이상이 모여 섹스를 포함해 여러 가지 사랑을 나누지만 대외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내부 지향적인 관계의 Polyfidelity가 ‘폴리아모리’의 대표적인 형태다. 이 외에도 인원수에 따라 ‘폴리아모리’는 다양한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를 합법적인 양다리로 보기는 어렵다. ‘폴리아모리’는 상대의 양해를 전제로 정신적 교류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도’나 성관계만을 목적으로 하는 ‘스와핑’과도 차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폴리아모리’는 연애 대상 각각에 대한 진심을 요구하고 있다. 연애 대상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는 어떤 이유에서 등장하게 됐을까. ‘폴리아모리’의 등장에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견해는 일부일처제가 갖고 있던 억압적 측면에 대한 반발심으로 ‘폴리아모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68혁명 젊은이들이 권력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폴리아모리’를 활발하게 했다는 사례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조약골 평화활동가는 “한국 사회를 경직되게 만든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대의제 민주주의, 일부일처제 등에 대한 반발로 ‘폴리아모리’가 등장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폴리아모리’는 완벽히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1929년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는 ‘서로 사랑하는 동시에 우연히 찾아온 사람도 인정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다자간 사랑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0여년전이다. 실제 1984년에 설립된 ‘loving more’이라는 ‘폴리아모리’ 옹호 단체에는 30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폴라아모리’는 등장 이후 다양한 매체에 노출 되며 우리 삶에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를 다룬 대표적 콘텐츠다. 1970년대 덴마크를 배경으로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사랑의 시대’도 남녀 5명이 공간을 공유해 살아가는 공동체에서 사랑마저 공유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폴리아모리’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피고 있다. 네이버에 연재됐던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웹툰도 폴리아모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상대의 양해를 전제로 정신적 교류를 동반하는 '폴리아모리' 사진/프리큐레이션 제공

 

폴리아모리는 인간에게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인가

  ‘폴리아모리’는 일부일처제 사회의 사람들에게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현상으로 여겨지며 비난받고 있다. ‘폴리아모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대개 ‘폴리아모리’가 기득권자들의 욕구만을 채워주는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일부일처제를 거부할 수 있는 이는 대체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이는 기득권들이 ‘폴리아모리’라는 형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폴리아모리’가 기득권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많은 심리학자, 생물학자들은 일부일처제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중 3~5%만이 일부일처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부르주아 남성들이 그들 계급의 도덕적 우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일처제를 내세웠다”고 일부일처제의 문제를 지적했다. 또한 영국의 정신분석가 애덤 필립스는 “일부일처제를 몰랐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로 일부일처 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라이언 또한 2013년 테드 강연에서 인간과 유전적으로 유사한 침팬지 '보노보'를 예시로 들며 일부일처제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크리스토퍼 라이언은 덧붙여 “가족이 중요해지며 많은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이상적인 성적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며 “일부일처제는 성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부터 강화된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양한 논의 속에서 특히, 폴리아모리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생소한 개념 탓에 폴리아모리스트로서의 자각도 어렵고, 애인과 지향점이 맞아야 해서 폴리아모리 연애 방식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주영 철학 박사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감추고 있던, 드러내지 않고 있던 성적 욕망에 대한 것이 담론이 활발해지고 연애, 성 전반에 대해 활발히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자 폴리아모리에 대한 관심이나 이야기도 진행된 것”이라며 “그러나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드러낸다고 해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쉽지않을 것이며, 폴리아모리가 한국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폴리아모리’라는 생소한 개념의 등장은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미래에 다양한 삶의 형태가 등장할 것을 알려주는 단편적인 예다. 미래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다층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며, ‘폴리아모리’는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점차 표면화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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