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과 무죄

  2006년 양윤호 감독이 1988년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인질극 ‘지강헌 사건’을 각색해 영화로 만든 ‘홀리데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와 동시에 서울 환경사업의 일환으로 판자촌 철거가 진행됐다. 이에 항거한 주민들이 공권력에 저항하며 시위를 벌이던 중 자신의 동생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본 주인공 지강혁은 시위에 동참한다. 이에 그는 징역 7년과 보호감호 10년이 확정돼 17년의 징역살이를 하게 된다. 지강혁은 복역 중 수 억원을 횡령한 대통령의 동생이 겨우 7년 형을 선고 받았단 사실과 겨우 20만원을 훔친 자가 20년 징역생활을 하다 교도소에서 죽은 사실을 알게된다. 이에 억울함과 분노를 느낀 그는 동료 수감생들과 합심해 교도소에서 탈출한다. 그는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지강혁 일당은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인다. 그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경찰들 앞에서 외친 후 인질들을 풀어주고 자살한다.
  2015년 CJ그룹 회장인 이재현 회장과 관련된 비리 사건이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이 회장은 1,600억 원대의 횡령혐의로 사법부 판결 2심에서 징역 3년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재벌 총수라도 개인의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거액의 조세포탈과 회사 자금 횡령배임 등을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가해 죄책이 무겁다. 엄중히 처벌해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민주적 경제발전에 이르는 길’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16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가 진행됐을 당시 이 회장은 사면됐다. “본인의 건강상태 등 인도적 차원의 배려가 있었고 도저히 수감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법무부는 사면이유를 밝혔다.
  2013년 기준 지난 10년간 수감생활 도중 사망한 인원 중 30%는 형집행정지·구속집행정지를 요청했다가 불허되거나 또는 절차가 진행되는 도중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그들에게 이 회장과 같은 돈이나 권력이 있었다면 감옥에서 죽었을까 의문이다. 돈이 없으면 사회적 약자 취급 받는 이 세상에서 그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 임에 틀림이 없다. 지강헌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친지 2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우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일어나고 있다. 우리들은 지난 세월동안 무엇을 이뤄왔는지 어디로 더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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