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사라질 이야기를 한다 - 독어독문학과 모민영 학우

  오늘은 너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대신, 침묵을 씹어 먹었다. 나는 오늘 무심함과 체념으로 가득 찬 도시의 저녁 공기를 마시며 일했다. 웃는 게 미덕이고, 겸손이 예의인 세상에서 나고 자란 애답게 살았다. 초침마다 스치는 네 얼굴을 애써 지우며 사람답게 사는 걸 잊어버리고 일하면서, 그간 네가 재잘거리던 그 모든 희망을 잊어버린 사람인 척 살았다. 새벽일을 끝내고 계집으로 태어난 그림자를 피하고자, 내가 하지 않았어도 내 죄가 되어버리는 그 모든 것들을 피해, 가로등을 등지고 도망쳤다.
  도망치는 그림자 아래, 이 나라에서 가장 복잡한 불빛의 도시에서, 밤이 흐르는 한강을 마주 보고 앉아 너와 나누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는 여전히 그날도 예뻤고, 내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버스를 타던 그다음 날도 예뻤을 것이다. 너를 기쁘게 하려고 준비했던 꽃다발은 어떤 모양이어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너여서 그토록 소중했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삶이 얼마나 얼룩져도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긴 밤이 굽이굽이 지나서야 알았다. 강을 앞에 두고, 여름 더위에 취해 우는 듯 웃는 사람들에게 등 돌리고서. 우리는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서로를 보려 노력했다. 그 어둔 강에 우리가 비치기를 기대하면서, 흘러가는 시간과 물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바람 부는 그 순간. 네가 노래한 그 이야기는. 차마 나는 동의할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거고, 어쩌면 지금을 견디다보면, 분명 더, 더 최고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나는 나오지 않는 앓는 소리로 동의했다. 실은 조금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네가 그런다니 그러려니 했다. 어련히 네가 하는 소리니 옳겠구나. 하면서, 네가 사랑하는 그 세상이 못내 싫어 삥 돌아서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뱉어내는 퀴퀴한 단어들이 싫었고, 너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 주눅 드는 내 멍청한 말투가 혐오스러웠고, 너는 더 높은 목소리로 더 아름답고 밝은 세상을 노래했다. 우리는 옆으로 길어지기만 하는 그림자로 남아, 영원히 섞이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런데도 서로의 무엇을 보고 웃으며 함께 있는 걸까. 너를 만나면서 해마다 드는 의문만 커졌고, 삶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걸 너의 눈동자에서 배웠다.
  나는 여전히 너의 가을을 닮은 눈동자 안에서 헤매는 어린아이구나. 사람들의 고함을 실은 한강이 흘러가는 걸 보면서 나는 체념했다.
오늘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잠 못 드는 새벽이 찾아왔다. 너는 나보고 ‘나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지. 휴대폰 액정 너머, 푸르게 넘실대는 너의 피로와 우울함에 문득 나는 울고 싶어졌다. 우리는 정말로 멀리 떨어져 있구나. 당장 너에게 달려가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운 거리에, 우리는 덩그러니 놓여있구나. 나는 어쩌면, 너의 시선이 닿는 그 모든 곳에서, 너에게 사랑을 주고 싶었다. 나는 네가 가장 높은 곳에 있어도, 가장 앞서 높은 음으로 노래해도, 그 뜨거운 분노로 가득한 도시에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하는 게 못마땅한 사람이었다. 그게 설령 얼마나 옳은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인지 알면서도. 네가 아프고 속상한 일이 싫어서 항상 입을 비쭉 내밀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
  나는 네가 언제나 안전한 곳에서, 하얀 웃음만 지었으면 했다. “그 후로 영영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마지막 문장을 마치기를, 내 평생을 담아 기원하는 사랑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너를 사랑해서, 높은음으로 노래하는 연습을 한다. 좀 더 세상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조금 더, 조금 더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전히 나는 너를 사랑하고 말겠구나. 너는 여전히 내게 영원한 사람이다. 너는 그 모든 것이 내 안에 박제되어 살아가겠구나.
  나는 여전히 어느 구절에서 숨을 멈추고,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을 적어 내릴 때마다, 호흡을 골라도, 여전히 빙빙 돌다가 주저앉는 곳이 내가 마지막을 완전하게 찍는 곳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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