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자꾸 사라진다 - 서한나

  대학생 땐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했고 대학을 졸업한 지금은 대학생으로 살던 날을 그리워한다. 떠올리다 종이에 적는다. 지나간 것들 중에 다시 왔으면 하는 것을.
  봄이 아닌 계절에는 봄을 생각한다. 봄이 오면 대청호에 가야지. 가서 종일 물을 봐야지. 벚꽃이 피는 날부터 지는 날까지 매일 걸어야지. 나무가 호르몬을 내뿜는 봄의 밤. 공기를 들이마시기만 해도 심장이 쫄깃해지고 명치가 시큰해지는. 삼월의 등교, 방송제작실습실, 땡땡이, 1500원 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내가 지나온 봄 중에, 어떤 봄은 이랬다. 두 시간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은 대학 동기들과 함께,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만든 것 같은 8000원 짜리 안주와 아세톤 맛이 나는 소주를 시켜 놓고 ‘OOO이 술을 마셔 O! 짝짝 O! 짝짝! 원! 샷!’ 요란을 떨었다. 몇 명이 집에 가고 몇 명의 정신이 가면, “네가 좋아”라고 말했다. 입을 맞출 때 손을 어디에 두어야 될지 몰라서 그 사람 손을 잡았다.
  너는 학교 안에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말랑하고 달콤한 것. 먼지 냄새, 벽돌 냄새, 젖은 풀냄새.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청춘이 무엇인 것 같냐고. 기대를 저버리고 싶어서 대답하지 말까, 하다가 말했다. “갈 곳도 있고 오라는 곳도 많지만 어느 자리에 가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상태인 것 같아요” 푸를 청에 봄 춘 이라는데.
  멍석 깔아주면 못 노는 시시한 애처럼, 나는 봄을 목 빠지게 기다리지만 봄이 진짜로 와버리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보고만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만큼 봄을 겪고 싶어.
  사진을 찍어도 순간은 가고. 아무리 써도 삼월은 가고.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을 주로 쓴다. 술집은 방이 있는 곳으로 가자. 봄이 지날 때마다 나는 절제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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