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새 차를 뽑은지 한달 반 만에 주행거리가 5000KM 를 넘었다. 전국 해안선을 두 번 일주할 수 있는 거리다. 신입생이었던게 얼마 전 같은데 벌써 3학년이다. 대학생활의 반절이 지났고, 취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바보상자보다 바보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1학년 때 작성한 기자수첩의 한 구절이다. 서툰 필력으로 기자수첩을 처음 쓴 게 얼마 전 같은데 편집국장을 하게 됐다. 지금도 필력이 크게 향상되진 않았다. 물론 바보상자보다 바보같은 세상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편집국장을 하겠다고 마음먹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첫 호를 낸다. 시간이 빠르다. 신문발행과 관련된 연락이 매일 이어지고, 줄어든 예산때문에 신문 발행횟수를 줄여야한다. 신문사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현실을 살아가다 문득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릴 적엔 시간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10년이 지나면 해양 도시가 건설되고, 우주여행이 자유롭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여전히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하늘은 비행기만 날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런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대신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하는 이른바 ‘YOLO(You Only Live Once)'족이 2017년 트렌드로 떠올랐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 온 기성세대의 눈에는 아무 대책 없는 향락주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YOLO’족은 경쟁으로 얼룩진 시대에서 미래를 향한 기대가 사라진 현대인들이 외치는 절망의 목소리며, 미래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아보겠다는 불굴의 의지 표현이다.
  ‘돈’과 ‘권력’에 맹목적인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더 이상 평등하지 않다. 야근과 휴일근무를 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을 누군가는 말 한마디로 가져가는 것을 보며 허탈함과 박탈감을 느낀다.
  누군가의 1시간은 6,470원의 가치가 있고, 누군가의 1시간은 수 억원의 가치가 있다. 누군가는 6,470원이라는 최소한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 시간을 살아간다. 태생에 따라 시간의 가치가 달라진다. 수저론은 하나의 정설이 됐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앞의 시간은 달려오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약인지, 독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얼마나 더 부르짖어야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