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다시 연말이다. 기차역에서 들리는 구세군 종소리도, 잔뜩 추워진 날씨에 두터운 외투를 입기 시작하는 행인 역시 연말을 알리지만, 기자는 연말의 도래를 다른 지점에서 느낀다.

  개강과 함께 캠퍼스에서 시작된 공사는 중간고사가 지나서야 하나가 마무리 되는 듯했고, 하나의 공사가 끝남과 거의 동시에 또 하나의 공사가 시작됐다. 그렇게 캠퍼스에 고요를 허락하지 않았던 공사들은 종강과 함께 마무리됐다.

  의도치는 않았을 것이다. 낙엽이 질 때 즈음, 각 구청이 환경개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한 보도블록을 뒤엎던 관행을 생각한다면,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연중엔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사업이 연말을 맞아 부랴부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제출 날까지 미뤄둔 과제를 전날 밤에야 하는 기자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서두를수록 주변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여유를 가졌다면 쉽게 발견했을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기자가 이번에 취재한 코어 사업도 그렇다. 행정상의 이유로 회계 연도를 넘겨 예산을 집행할 수 없었고, 사업단은 2월 회계가 끝나기 전까지 예산을 써야한다.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 했건만, 시간은 그만큼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 한 마디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참 많았다. 총학생회 투·개표와 정책토론회를 비롯해 학내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상황 모면만을 위한 변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최선을 다했다는 순진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선에 대해 의문이 든다. 최선의 사전적 의미란 가장 좋은 것일 텐데, 그 좋고 나쁨은 누가 정해주는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좋고 나쁨은 시민이 정해야할 것이다. 그렇기에 최선을 말하기 전에 당사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최선을 다했던 불가항력적인 사안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해 이어 묻는다. 절차의 완결을 따져야 할 것 같다. 급하게 추진되던 사업들이 무시했던 과정은 없었는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당사자의 소리를 들었는지 따져본다. 이렇게 최선을 풀이할 수 있다.

  어찌됐던 대학부 기자로 반년 간 활동하며 만났고 목격했던 많은 사람과 순간은 이제 과거로 남았다. 생각해보면 연말과 연초는 맞닿아 있다. 과거와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사다난 했던 지난 한 해도 이번 해의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맞이하는 2017년에는 ‘어쩔 수 없다’는 한마디는 그만 들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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