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재동 기자

  “열심히들 사신다 진짜...”
  영화 ‘부당거래’의 악역인 류승범(주양 역)은 “열심히들 사신다 진짜...”라는 말로 ‘을’쯤 되는 사람을 비웃는다. ‘을’은 자신의 상사를 걱정하며 본인의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일을 하는 모습이 ‘갑’쯤 되는 검사에겐 그저 자존심을 버려가며 밥줄을 지키는 모습 정도로 보인다. 청년을 정의했던 단어는 넘쳐난다. 386 세대, X 세대, 밀레니엄 세대.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N포 세대, 세월호 세대, 흙수저 세대 등의 자조적인 단어로 정의된다. 왜곡된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출발선이 다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노력한 만큼 얻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과 함께 절망적인 낱말을 반복해 접하면서, 해도 안 될 것이라는 깊은 절망감이 우리들의 내면에 자리 잡아간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요”
  젊은이들에게 값싼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열정페이’라고 한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한 근로자는 약 280만 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14.6%가 열정페이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랜드 그룹이 전국 아르바이트생의 임금 84억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뉴스에 우리들은 다시금 좌절한다. 항간엔 일을 했으니 돈을 달라고 주장하는 순간, 권리는 우리들에게 호의가 되는 마법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쁜 학교생활과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청년들은, 갑을관계의 을이기 때문에 이런 부조리를 묵인하고 넘어간다.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낮은 청년 ‘을’의 권리는 ‘갑’들의 호의로 여겨지는 시대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서도철 역)은 재벌 2세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동료를 제압하면서 경찰의 의무를 다하라고 야단친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그 형사 또한 생계를 유지하려는 하나의 ‘을’이 ‘갑’에게 부역한다. ‘베테랑’은 ‘부당거래’와 다르게 가진 것 없고, 빽 없는 ‘을’이 ‘갑’들에게 정직함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영화에서 ‘을’은 돈은 없지만 가오로 표현되는 정직함을 무기삼아 험난한 세상을 요령으로 능숙하게 헤쳐 나가는 ‘베테랑’이다. 이런 영화 속 일들이 조금씩 현실에서도 들려온다. 이랜드 그룹의 임금체불 사건이 보도된 이후, 주 고객층인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랜드 계열사의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정직하지 못한 갑들에게 을의 무기로 응징하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가오’로 승부하는 것이다.
  “판 뒤집혔다”
  요즘 ‘베테랑’들의 반란이 심상치가 않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표결에 부쳐진 날, 사람들은 국회를 향해 탄핵안을 가결하라고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은 234표로 가결됐다. 이제 촛불은 헌법재판소를 향한다. 촛불을 잡은 ‘베테랑’들의 정직함이 갑의 권력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됐고, 베테랑들은 그 정직함으로 불리했던 판을 영화처럼 짜릿하게 뒤집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기에 아직 사회는 ‘베테랑’들의 반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시지 않고 있다. 어쩌면 이 어수선함이 ‘정직함’이 통하고 권선징악이 이뤄지는 사회로 변해가는 성장통은 아닐까 기대하면서,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베테랑’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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