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를 만나다

독일 베를린에서 희망나비 유효정 학우(사진 왼쪽부터) 김인혜 학우

  작은 나비의 날개 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우를 일으킨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사회 문제의 해결을 희망하는 희망나비 충남대지부의 유효정 (정치외교·2)와 김인혜 (천문우주과학과·3) 학우를 만나봤다.

Q1.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나비(이하 희망나비) 소개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설명 을 해달라.

  희망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 대학생들이 모인 단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역사·철학·정치·경제 공부도 하고 있다. 공부와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해봤다. 가장 간결하게 말한다면 ‘반전평화’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추구한다.

Q2. '소녀상 지킴이 프로젝트',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대학생 행동', '유럽평화기행' 등 희망나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희망나비의 활동에 대한 소개를 한다면.

  앞서 얘기했다시피 스터디를 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12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수요집회도 주관 및 참여하고 있다. 국내 역사기행 역시 하고 있다. 5·18광주평화기행, 제주평화기행, 노근리 역사기행도 가고 있다. 지난 17일 1학생회관에서 진행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세계 1억인 서명운동 캠페인도 하고 있다. 방학 때 농민과 학생연대활동, 농활도 하고 있다.

Q3. 희망나비 충남대지부가 1학생회관에서 시위하는 것을 자주 봤다. 희망나비 충남대지부에서는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희망나비를 시작하게 됐나?

유효정(이하 유) : 희망나비 충남대지부 스터디는 역사 먼저 시작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4월 총선 등 시사 문제가 있을 때는 영상을 보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1인 시위, 서명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을 떠나서 평화기행, 수요집회 등 중앙 프로그램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김인혜(이하 김) : 원래 (희망나비에) 관심이 있었는데 다른 동아리 활동을 하느라 바빴다. 희망나비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할지 몰랐다. 시나브로 동아리 활동에서 동학농민운동 관련 연극을 준비할 때 우연히 유효정 학우와 같은 차를 타고 이동하게 됐다. 서로 다른 소속이었지만 그때 이야기를 나누다 희망나비 참여를 결심하게 됐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인권과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유 : 희망나비에서 붙인 제주평화기행 포스터를 봤다. 제주평화기행에서 많은 것을 봤다. 4·3 민주항쟁과 미해군기지, 일제 강점기 때 전쟁기지, 알뜨레비행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그때 봤다. 그것들을 보면서 내가 인권에 관심 있다고 말만했지 행동한 건 없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생산적인 무언가를 해보자고 생각해서 희망나비를 하게 됐다.

Q4. 유럽평화기행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사람이 많은 관광지 위주에서 시위를 했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에서 시위를 할 때 마침 브렉시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진을 찍어갔다. SBS 특파원도 만났다. “희망나비에서 나왔어요” 하니까 “좋은 일한다. 고생한다”고 했다.
  서명캠페인도 했다. 서명캠페인을 할 때는 텍스트를 보고 영어로 먼저 설명을 한다. 질문이 있으면 다시 답한다. 외국인들도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위안부의 위안을 comfort로 알고 있어 교정해준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줬다. 특히 독일에서 시위할 때 위안부문제에 대해 독일 시민들이 많이 알고 있어서 신기했다.

영국 런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Q5. 희망나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희망나비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나?

유 : 기억나는 순간을 계속 생각해봤다. 제주평화기행이 터닝 포인트였다. 제주평화기행에서 강정마을에 갔을 때는 해군기지가 거의 완공돼가고 있었다. 천주교에서 매일 미사를 드렸는데 천주교를 믿지는 않지만 같이 참여했다. 미사 중 신부님이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너무 구슬펐다. 노래에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신부의 노래를 듣고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때 정부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평화와 반전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됐다. 자연을 훼손시키면서까지 군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김 : 기행 중 기림일캠프가 있다. 기림일캠프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첫 증언을 하고 나서부터 다른 분들도 위안부였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날을 기리기 위해 기림일캠프라 한다.
  기림일캠프에서 목사분이 자신이 고문당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충격이었다. 이렇게 나이 많으신 분도 열심히 하시는데 젊은 피인 내가 힘내서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사드 배치반대 때 같이 행진하며 아저씨·아주머니께서 “젊은 친구들 여기 나오게 하면 안 되는데 나오게 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나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청년으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희망나비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같다. 내가 좀 더 이 문제를 알리고 행동을 하자 침묵하지 말자. 이제는 행동을 하자고 생각을 했다.

Q6. 지난 해 12월 28일, 한·일합의가 있었고 그 이후 한·일합의폐기와 소녀상 철거 반대를 위한 농성을 해오고 있다. 올해 12월 28일이 되기 전까지 한·일합의 무효화가 목표로 알고 있다. 한·일 합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합의문 전문을 한 문장 씩 따져보면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 중 제일 말이 안 되는 건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합의인가 싶다. 1965년 박정희의 한·일협정을 잇는 제2의 한·일협정이라 보여진다.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진실과 사죄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국제 정세와 이해관계만으로 합의를 맺었다. 그런데도 굉장한 외교적 합의를 이뤄낸 것처럼 이야기한다. 정부지원 없이 할머니들이 민간외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 행동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합의문은 최종적이라고 한다. 일본정부의 고위직은 계속해서 망언을 해왔다. 합의 후에 사죄편지라도 쓸 생각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할 정도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에게 면죄부를 쥐어준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무효가 되지 않으면 후대에 어떻게 전해질지도 모른다.
  소녀상 철거와 관련해서도 대학생들이 계속 농성하고 있다. 일본이 이 문제에 진정성이 있다면 소녀상을 보존해야하고 교과서에도 내용을 실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국가 간의 합의기에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Q7. 한·일합의폐기와 소녀상 철거 반대를 위한 농성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농성장에서 겪은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면?

  사실 엄청 인상적이고 큰 사건을 겪지는 않았다. 소녀상을 찾는 외국인들도 있다. 일본인이 단체로 관광을 와서 인터뷰도 하고 설명도 짧게 듣고 눈물 흘리는 분도 있다. 일본에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있다 생각했다.
  시민들이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다. 물품들은 시민들이 지원해줬다. 어른들 중에선 미안하다고 말씀하신 분도 많다. 우리가 해결했어야 됐는데 너희가 나서서 하게 해 미안하다 말씀하신다.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도 와서 말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간다. 농성장에 있으면 힘들기도 하다. 체력적으로 힘들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해진다.
  대사관이 처음에 갔을 때는 증축중이라 철골만 세워져있었는데 지금 가보면 담장이 세워져있다. 점점 벽이 강화되고 있다.

Q8. 한·일합의부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 : 굉장히 공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생각하고 대륙에 진출하려는 야망이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기림일캠프에서 만난 일본인 대학생들은 자위대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자연재해 때 도와주러오는 사람이 자위대지 군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내외에서의 자위대 이미지가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엔 화가 났는데 교육의 문제도 있고 정부의 문제도 크다 생각한다.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군대로 자위대를 창설한 걸 보면 다시 군대가 부활했다 봐도 될 것 같다.
유 : 작년부터 국정교과서, 한·일합의, 사드배치 등의 사안이 있었다. 그때마다 박근혜 정부가 소통을 하려고 했나하는 의문이 든다. 외교적으로 뭔가를 추구함에 있어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일텐데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한·일합의가 일본에 면죄부를 쥐어주는 꼴이라 말했는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역시 그런 맥락인 것 같다. 일본과 청산되지 않은 문제가 있고 영토 문제도 있는데 그런 것을 뒤로 둔 채 계속 추진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Q9. 앞으로의 희망나비 충남대지부의 활동이 궁금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학습 활동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활동의 질도 높여나가려 한다. 영화제도 그렇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질 생각이다.
  희망나비 충남대지부만의 계획은 스터디 커리큘럼을 좀 더 잘 짜보려 해보는 것이다.

Q10. 희망나비의 최종 목표 또는 희망나비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희망나비의 최종 목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돼서 모임이 해체되는 것이다. 하루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외에도 사회문제가 많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풀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문제도 풀려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때는 다른 사회 문제를 다뤄야 될 것이다.
유 :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 : 비슷하다. 다 같이 잘 살 수 있고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를 꿈꾼다.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이 있는 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Q11. 우리 학교 학우들과 학내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전 특징인지 모르겠는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다들 거리낌이 있는 것 같다. 같이 활동해주면 좋겠다. 응원들은 많이 해준다. 다만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홍보를 좀 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유럽평화기행이다. 나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진짜 유익하고 이번 기행이 더 많은 나라를 간다. 평화기행이 희망나비 분도 있지만 페이스북에서 홍보보고 오는 일반인도 많다.
두 번째는 66일 간의 날개짓이다. 12월 28일 한·일합의 폐기추진 1주년을 맞는다. 그래서 소녀상 인증샷 찍기, 자신과 가까운 지역에 있는 소녀상 찍고 주변분들 태그해서 SNS에 올리는 소녀상 인증샷 찍기를 한다.
  또 평화상 알기 캠프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둘러본다.
  매주 토요일 소녀상 앞에서 토요행동이라는 집회를 하기도 한다. 많은 분이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다.
세 번째는 소녀상 영화제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일본군 위안부 관련한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같이 보고 소감을 나누는 자리이다.
  희망나비 관련 정보는 희망나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받아볼수 있다. 회원 모집은 365일 열려있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