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가 이겼다. 구태의 정치가 돌아왔고, 진보한다고 믿었던 사회는 후퇴하고 있다. 다시 악의의 시대다.
  신문이 발행 때마다 조회 수와 댓글을 확인한다. 어떤 기사가 가장 높은 조회 수를 올렸는지, 어떤 기사에 댓글이 많은 지 지켜본다.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기사보다는 개인과 단체를 지적하는 기사가 높은 관심을 받는다. 부정할 수 없는 질문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힐난의 글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힐난에 대한 기호는 혐오를 기저에 둔 건 아닐까.”
  트럼프가 이겼다. 여성혐오・인종차별주의적 발언・장애인 비하・성소수자 혐오 등 소수집단을 향한 적나라한 혐오도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바꿀 의제는 되지 못했다.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 사회 내 혐오는 당장 모습을 드러냈다. KKK(백인우월주의사상을 지닌 극단적 인종차별 집단)는 거리행진을 하며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했다. 소셜네트워크에서는 트럼프 지지자에게 폭행을 당한 게이의 사진이 올라왔고, 한 여성은 직장 상사에게 여성 혐오 문구가 담긴 트럼프 사진을 1시간 꼴로 받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와 함께 혐오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졌다.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라 말하며 대통령 지지율만 고심하는 참사 직후 작성된 내부 문건도 나왔다. 1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박근혜 하야”를 외쳤지만 청와대는 하야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여당 김진태 의원은 “촛불을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에게는 민중의 불같은 분노보다 아직 박근혜 대통령을 수호하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 민중보다 대통령이 우선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구태의 정치가 돌아왔다. 아니 부활했다.
  트럼프 당선을 분석하는 기사가 어지럽게 쏟아진다. 당선 이전까지 미치광이 취급을 받던 트럼프는 새 시대를 열어갈 아웃사이더로 비춰진다. 트럼프의 공약, 발언 모든 것들이 매력적인 정치로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가 연 혐오의 시대는 의미 없는 정치적 올바름에 빠진 이들의 착각으로 비춰진다.
  박근혜 게이트는 단독보도를 위한 단독보도가 되고 있다. 가명으로 사용된 ‘길라임’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대선 홍보물에서 시크릿가든의 OST를 패러디했다는 단독 기사가 이어졌다. 최순실 신발 브랜드가 주목받고, 박근혜 게이트에 유명연예인의 이름이 거론된다. 박근혜 게이트로 드러난 구태의 정치는 단독보도 속에서 지워지고 있다.
  시대의 악을 마주한다. 느리지만 조금씩 사회는 더 나은 곳을 향하고 있다고 믿어왔으나 지금 우리의 시대는 후퇴했다. 혐오가 지지를 얻었고 힘겹게 지켜낸 민주화는 사라져간다. 언론은 시대의 악에 무심하다. 보다 자극적인 기사만을 고심한다. 앞으로 펼치질 우리의 시간은 어둡다. 악의의 시대는 이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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