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2일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날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분노한 100만 국민이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주장하며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으니,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쓴 날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날 필자는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에 마련한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였다. 향년 94세의 삶을 살다간 한양원 회장, 그의 공식 직함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대표,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갱정유도 도정,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이었다.
  민족종교 최고 지도자인 한양원 회장은 매스컴의 별다른 주목도 받지도 못한 채 향년 94세의 삶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그는 항상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살았지만, 현실에 대한 혜안과 유머를 소유한 분이었다. 그는 민족의 가치를 중시하면서 좌와 우를 넘나들고, 서구의 물결아래 위축된 민족종교들을 모아 민족종교협의회를 만들어 30여년을 이끌어 왔다. 한겨레신문 11월 11자 조현기자가 쓴 “청년 한양원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민족종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의 마지막 치고는 너무도 초라하여,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만감이 교차하였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 천도교, 대종교, 보천교 등의 민족종교에는 수백만의 신도들이 있었고, 수많은 민족종교 지도자들은 그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애환을 달래고 민족의 독립과 번영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3.1운동과 독립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한양원 회장은 이러한 민족종교의 수장으로서 말년엔 세계를 누비며 통일운동과 겨레얼살리기운동에 앞장섰다.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차원이 아니라, 탄생 그 자체가 민족사의 비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상해 임시정부의 전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일제의 위안부 문제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면죄부를 주는 반민족 반민주 행보로 일관하였다. 해방과 분단 71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36년의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한양원 회장이 사셨던 94년의 한민족의 역사는 참으로 다사다난하였다. 일제강점기와 민족해방, 민족분단과 6.25 그리고 남한사회의 군사독재와 민주화과정이 있었다. 그 사이 많은 친일파가 변하여 반공주의 애국자와 자본가가 되었는데,  그 중에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가 변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어 지금의 국정농단의 사태를 만들어 내었다.
  만약 우리가 친일 반민족주의자들을 제대로 청산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이러날 수 있었을까? 전통 상복을 입고 곡을 하는 상주를 보면서, 우리 민족이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다. 한양원 회장의 부음소식과 더불어 밝혀진 100만의 촛불이 우연만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고인은 100만의 촛불이 진정한 민족 민주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