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목해야 할 쟁점 세가지

   “니는 똑똑한데,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기라. 까놓고 말해서 저, 서울대씩이나 간 놈들이 데모하고 하는게 문제 아니가? 문제가 있으면 공부를 해가 논리적으로 따져야지. 나는 대학을 못가봐서 모르겠지만, 저, 공부하기 싫어서 지랄병떠는 거 아니면 뭔데? 점마들 세상은 데모 몇 번으로 바뀌는 말랑말랑한 세상이야?”
( 영화 <변호인> )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났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이 농락된 심각한 사태 속에 온 국민들은 허탈감과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여전히 부정에 맞서는 자들을 “공부나 해라”라는 말로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존재한다. 부정한 권력에 맞서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최순실 게이트의 쟁점을 짚어봤다.

쟁점 ➀ 최순실, 대통령 연설문·
국무회의 자료·국가기밀 사전 열람해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2015년, 브라질 경제인 행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연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청와대 국무회의). 박근혜 대통령은 난해한 단어·내용이 포함된 연설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휘말린 바 있다. 해당 연설문들은 최순실 씨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달 24일, jtbc <뉴스룸>은 단독으로 입수한 최순실 씨의 태블릿PC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최 씨의 태블릿PC에는 대통령의 연설문 44개가 발견됐다. 연설문 파일은 모두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연설문을 발표하기 전 생성·수정됐다. 즉, 사인인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비공식적 루트로 사전에 받아봤다는 의미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국제적으로 알린 2014년 3월 28일 드레스덴 연설문(“통일은 대박이다”)도 발표 하루 전 최 씨에게 보내졌다. 드레스덴 연설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며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 씨의 태블릿PC 속 연설문 곳곳에는 직접 수정한 부분으로 보이는 붉은 글씨가 발견됐다.
  대통령 연설문은 청와대 내에서도 극비 자료다. 대통령의 연설은 곧 정부·국가의 정책 방향·입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만약 연설문이 발표 전 청와대 밖으로 유출됐다면 이는 명백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에 해당된다. 최순실 씨가 연설문 작성과 수정에 개입했다면 이는 국가의 외교적·사회적 방향을 사인이 임의로 조정한 명백한 ‘국정농단’인 셈이다.
  또한 최 씨의 태블릿PC에는 대통령 연설문뿐만 아니라 국무회의 말씀자료·회의자료·취임식 행사자료 등 다른 국가기밀 자료도 발견됐다. 총 200여개의 파일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를 추천한 인사 개입문건은 물론 대통령과 일본 특사 간 회담 때 ‘독도 언급 시 미소만 지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지침이 담긴 문건까지 담겨있었다. 즉, 최 씨는 비선실세로서 국정운영은 물론 정부 인사·외교 현안에도 지속적으로 개입해온 것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군사기밀 자료다. 2012년 12월 28일, 박근혜 당선인과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 10시간 전 최 씨는 우리 군과 북한 국방위원회가 세 차례 비밀 접촉한 내용이 담긴 ‘(1)외교안보’ 문건을 전달받았다. 이 문건은 당시 남측 민간인들의 대북 전단살포 계획에 대한 논의로써 지금까지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기밀자료다. 최 씨는 공인도 접근하기 힘든 군사기밀까지 받아봤다.
  해당 문건을 최 씨와 공유한 정부 인사로는 이번 정권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던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으로 드러났다. 최 씨의 태블릿PC 계정인 ‘greatpark1819’는 문고리 3인방이 공용으로 쓰던 메일 주소와 동일하다. 검찰은 문고리 3인방이 해당 계정을 통해 최 씨와 국가기밀을 공유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쟁점 ② 미르재단·K스포츠는 최순실의
‘지갑’…청와대 물심양면 도왔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은 한류와 우리 스포츠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설립됐다. 두 재단은 여러 대기업이 속해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총 774억원의 출연금을 받아 각각 지난해 10월, 올해 1월 설립됐다. 그러나 두 재단은 설립 과정에서부터 여러 의혹을 샀다.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리는 문화재단 설립 허가가 불과 5시간 만에 승인됐고, 많은 대기업이 800억 원에 가까운 출연금을 짧은 기간에 쾌척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최 씨는 두 재단을 독일로 비자금을 빼돌리는 창구로 활용했다. 최 씨는 미르 재단을 측근인 CF 감독 차은택 씨의 지인들로 채웠고, K스포츠재단 이사장에는 단골 마사지센터 대표 정동춘 씨를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지분을 독점한 페이퍼컴퍼니인 더블루K·더블루K 독일법인·비덱스포츠에 사업을 수주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
  더블루K는 K스포츠재단이 설립되기 하루 전 설립된 스포츠 마케팅 회사로 최 씨와 2014년부터 동업자 관계인 고영태 씨가 이사를 맡아 운영했다. 그런데 더블루K는 사실상 K스포츠재단과 직원을 공유하는 회사로 밝혀졌다. K스포츠재단 직원인 박헌영 과장과 노승일 부장은 더블루K 사무실에 매일 출근했고, 최 씨의 사적인 업무도 도맡았다. 이들은 독일 현지에서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머물 호텔을 구입하고, 훈련서 증명 서류에 서명했던 실무진이다.
  K스포츠재단은 올림픽 비인기 종목 육성을 명목으로 4개 대기업에 80억원의 투자 유치를 시도했다. 이때 선정된 회사가 최 씨 소유로 독일에서 설립된 비덱스포츠다. 비덱스포츠는 등록된 피고용인이 최 씨의 딸 정유라의 승마코치 단 한명인 작은 회사다. 수익도 없고 직원이 한 명인 회사가 80억 원의 사업 수주에 선정된 것이다. 또한 비덱스포츠와 더블루K 독일법인의 현지 주소가 같고, 양사 간 계좌거래 내역이 확인됐다. 금액이 맞지 않아 실제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최 씨는 독일에 비덱스포츠·더블루K 독일법인을 페이퍼컴퍼니로 세우고 재단자금을 독일로 빼돌리는 연결고리로 쓴 것이다.
  또한 두 재단의 설립·운영에 최 씨 뿐만 아니라 청와대도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사업 경험이 전무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행사를 진행해 논란이 일었다. 또한 더블루K가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의 장애인실업팀 창단 사업을 따내는데도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 더블루K 조성민 전 대표는 “나는 바지사장이다. 해당 사업 논의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차관과 미팅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2일 검찰 출두 직전 “대통령의 지시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집에 개입했다”고 시인했다.
  최 씨가 두 재단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과정은 과거 독재정권 때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결국 최 씨는 800억 원 규모의 두 재단을 자신의 재산을 증식하는 데 활용했고, 청와대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운 꼴이 됐다.

 쟁점 ③ 최순실의 그릇된 모성애?
 금수저 뛰어 넘는 ‘신의 수저’ 정유라

  최 씨의 딸 정 씨에 대한 특혜 의혹도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정 씨는 체육특기자 승마 종목으로 2015년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입학 과정은 물론 입학 후 성적·학사 관리에 있어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정 씨가 입학한 해인 2015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종목은 11개에서 23개로 크게 늘었다. 승마 부문도 이때 신설됐다. 총 60명 지원자 중 승마 부문 합격생은 정 씨가 유일했다. 또한 당시 입학규정에 따르면 '원서 접수 마감일 기준 3년 이내로 국제 또는 전국 규모 대회에서 개인 종목 3위 이내'의 수상실적만 입시에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씨는 원서 접수일을 나흘 넘긴 2014년 9월 20일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딴 금메달이 실적으로 인정됐다. 심지어 단체전이 아닌 개인전으로 실적 인정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금메달이다. 이는 명백한 ‘부정입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청와대가 등장한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2014년 4월 29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서 생성된 체육특기자 입시 관련 문건이 최 씨 측근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입수된 문건은 누군가가 최 씨에게 팩스로 송신한 33장 중 18번 째 장이었다. 해당 문건에는 ‘체육 특기생 단체종목에서 개인기량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체육특기생 면접 비중을 줄이고 개인별 기록을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해당 팩스가 전송된 지 5개월 뒤, 정 씨는 부정입시로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결국 정 씨의 이대 입시에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한 개연성이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밖에도 최 씨가 정 씨의 제적 경고 문제로 직접 이대에 항의 방문한 직후 지도 교수가 교체되고 학칙이 개정된 사실도 논란이 됐다. 또한 비속어·오탈자가 즐비한 정 씨의 레포트가 B 학점을 받아 학점 특혜 의혹까지 불거졌다. 심지어 정 씨가 졸업한 청담고등학교의 체육특기생 ‘승마 마장마술’ 부문이 정 씨가 재학한 2012년부터 2014년 동안만 운영됐다는 사실도 드러나 최 씨가 딸을 위해 어디까지 청와대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판단이 어려울 정도다. 현재 교육부는 1일부터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이화여대·청담고 감사에 착수했다.

우리가 분노해야 할 이유,
“국가의 주인은 국민”

  최 씨의 국정 농단사태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여러 의혹들에 국민들은 큰 충격과 낙담에 빠졌다. 지난 달 26일, 이화여대의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서강대, 서울대, 부산대, 카이스트, 우리 학교 등 대학사회의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에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택시기사 이성렬(54·중구 오류동) 씨는 “믿었던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충격적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국민을 우롱한 위헌 행위다. 국민들은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권력이 아닌 ‘사인’에 의한 통치를 받았다. 국가 통치 권력이 국민들의 동의 없이 이전됐다. 이는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행사해야 할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된 것이다. 참여연대 장은주 편집 위원은 “최순실 게이트는 민주공화국의 기본요건인 공공성·법치가 무시되고 사인이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것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기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명확한 수사와 국민의 감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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