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그야말로 사상초유의 사건이다. 대통령은 40년 간 자신이 의지해온 사이비 종교인에게 국가 통치권의 상당 부분을 ‘헌납’했다. 결국 국민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가 권력을 대통령에게 합법적으로 맡겨놓고도, 한 사이비 종교인의 통치를 받았다. 국민 주권과 대통령의 국가 통치권 사이를 이어주는 민주주의의 알고리즘이 최순실로 인해 무참히 절단됐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부정됐고, 국민은 정부에 의해 철저히 사기당했다.
   한 국가의 국정 방향·철학이 한 사인에게 난도질 당한 참담한 상황에서 다행히도 언론은 제기능을 다했다. JTBC는 최순실이 사용하던 태블릿PC를 입수해 청와대로부터 유출된 대통령 연설문·국기 기밀 자료를 보도했다. TV조선은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집에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이 개입된 사실을 보도했다.
  대통령은 JTBC의 첫 보도 이후 대국민사과를 통해 이를 해명했다.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일부 자료에 대해 최 씨 의견을 들었지만 청와대 보좌 체제가 완비된 후 그만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 JTBC는 취임 후 상당 기간 연설문·국가 기밀이 유출된 정황을 보도하며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반박했다. 결국 거짓말을 거짓말로 막던 대통령은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사실상 그때부터 박근혜 정부는 끝났다. 정부로서의 정당성·신뢰를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리던 30%의 정부 지지율은 진작 깨졌고, 지난 4일에는 5%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갱신했다. 국민 모두가 한목소리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다. 이번 정부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끝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숨이 멎은 환자에게 긴급수술과 같은 의사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죽은 환자다. 죽은 환자를 살리는 것은 의학이 아닌 연금술의 영역이다.
  그런데 여당인 새누리당은 위험한 연금술을 시도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나도 연설문 같은 걸 쓸 때 친구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실언을 했다. 또한 당내 소장파·비박 의원들 대다수가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만, 친박 의원들로 구성된 지도부는 정국 전환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새누리당은 이번 정부의 사망선고를 믿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기자도 보수적 가치를 신봉한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며 더 이상 추잡해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보수주의 이전에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사망선고를 인정했다.
  이제는 여당이 이를 받아들일 때다. 정치공학적인 계산은 내려두고, 박근혜 정부의 인공호흡기를 떼야 한다.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현재 여당이 해야 할 일은 제2의 최순실 게이트를 방지하기 위해, 소중한 경험적·역사적 사례를 남기기 위해 이미 죽은 박근혜 정부의 ‘부검’에 착수하는 일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한국 사회에 남길 자산이라곤 스스로가 부검의 대상이 되는 길 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새누리당이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박근혜 정부의 사인은 스스로가 초래한 ‘자살’임이 명백하지만, 새누리당 또한 무능한 의사였다. 무능한 의사는 환자의 죽음에 있어 책임을 져야한다. 때문에 새누리당이 부검 집도의 주체가 돼선 안 된다. 이번 정부에 대한 부검은 국민이 직접 나설 것이다. 그리고 메스의 칼끝은 다음 환자인 새누리당과 친박계 정치인들에게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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