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말'인가?
요새 여러 말이 무성하다. 말이 오고가고, 그 말에 또 이런 저런 말이 섞이고. 대학가에서 시작된 그렇고 그런 ‘말’ 때문에 온 사회가 시끄럽다. 오늘 아침까지 이어지는 언론의 보도와 뜨거운 세간의 관심 탓에 비판적 이성을 활용해 어떤 ‘말’이 오가고 있으며, 논란의 내용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기자의 당연한 책무다. 요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어떤 ‘말’에 대해 기자의 말도 준비해야 함을 인지해, ‘말’과 관련된 사회의 언어를 통해 공부해보고자 한다. 그에 앞서 기자는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 어떠한 부정적 감정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백마병.’ 백마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사랑과 관심으로 환호를 보내는데, 이런 눈길과 호응은 사실 백마를 타고 있는 백마 위의 사람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백마는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백마와 같이 자기 착각의 늪에 빠진 사람을 ‘백마병’이라 한다. 말이 사람보다 못하다는 주장이 힘을 잃어가는 우리 사회를 감안하더라도 환호와 관심의 방향은 백마 위의 사람을 향해 있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는 말의 경우 백마 탄 왕자님보다도 더 큰 무게감의 인물이 올라타 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백마도 아닌데 백마보다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백마보다 더 위대한 그의 말은 ‘백마병’의 증세로는 설명의 한계를 가진다. 그렇다면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뜻에서 ‘창조마’라 부름은 어떨까? 이 ‘창조마’는 오늘도 대학가를 넘어 온 사회를 달리며 들쑤시고 있다. 그럼 이제 알겠다. 그는 ‘창조마병’이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속담과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뜻의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두 표현 모두 ‘인간의 욕심이 한없음’을 의미한다. 말을 타고 있는 그를 위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대학이 움직였다.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는 ‘우연’이라는 우주의 기운이 전해준 네잎클로버가 자라난다. 네잎클로버 옆에는 창조마의 말발굽에 처참히 밟힌 평범한 우리의 세잎클로버가 숨죽이고 있다. 말을 타는 것은 자유다, 말을 타보니 경마 잡히고 싶고, 종 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역시 기자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대로만 살지 않기에 우리는 말이 아닌 사람이 아닌가?
흔하게 쓰는 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가 있다. 말을 타고 있는 그는 지난 SNS에는 “능력없으면 니네부몰원망해”라고 적었다. 능력 없는 기자는 너무도 가혹한 그의 말에 서럽기도 하지만, 결코 부모를 원망하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능력이 없는 것을 부모 탓할 게 아니라, 제 능력이 아닌 것을 제 능력인 양 자기착각에 도취해 타인의 부모까지 능욕하는 ‘고삐 풀림’을 되묻고 싶다. 아, 물론 그의 말마따나 그의 부모에게 물어야할 듯하다.
‘말 꼬리에 파리가 천 리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남의 세력에 의지해 기운을 편다는 말”이다. 흔히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처럼 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그 권력에 기댄 기운을 ‘10년’에서 ‘천리’로 작게 보는 뉘앙스라 그들이 서운해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남의 세력에 의지해 기운을 펴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며, 이것은 천리든 10년이든 언젠가 끝이 난다. 우리 속담에는 ‘정승 말 죽은 데는 문상을 가도 정승 죽은 데는 문상을 안 간다’도 있다.
여러모로 그의 ‘말’로 인해 이런 저런 말이 생기고 사회가 온통 시끄럽다. 이번 계기로 기자는 ‘말’관련 표현에 대해 학습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지적 희열보다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우리가 마주한 아침이 ‘말’도 안 되리만큼 참혹하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 터져 나온 우리의 질문과 우려가 ‘말 귀에 염불’이 될까 두렵다. 요즘 시대에 이게 무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