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19일 발표한 ‘대학 졸업유예의 실태와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졸업유예 경험자 비율은 2013년 44.9%로 나타났다.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인원이 매년 졸업을 유예한다는 얘기다. 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공별로는 인문(59.7%)·사회계열(57.2%)의 졸업유예 비율이 의학계열(14.4%)과 교육계열(22.3%)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인문계와 사회계열 학생들이 맞닥뜨리는 취업 불확실성이 매우 높음을 뜻한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여야 할 대학생시절, 우리 학생들은 미래 걱정에 푹 빠져있는 게 현실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극소수가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모습을 매스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흙수저로 규정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는 여러 가지 책을 써내며 위로와 격려를 해왔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실효성 없는 그저 입에 발린 소리로 여겨질 만큼 현실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이솝우화의 한 대목을 떠올려본다.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만 하는 토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도 불행하게 여겨졌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토끼들은 이렇게 겁에 질려 사느니 차라리 물에 빠져 죽어버리자고 마음먹고 연못으로 깡충깡충 뛰어갔다. 연못가에 있던 개구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가장 약자라고 생각했던 자신들을 두려워하는 개구리들의 모습을 보고 토끼들은 깨달았다. 자기들의 현실이 생각만큼 그렇게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다들 어릴 때 읽어서 알고 있겠지만 우리 대학생들에게 이 우화를 다시 한 번 들려주고 싶다. 위로만 올려다보니 금수저의 모습과 대비된 자신의 처지에 좌절의 감정이 생겨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배려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눈에 뜨일 것이다. 그러면 그런 배려를 받을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받으려고 노력하면 좋겠다. 각종 특성화 사업과 에이스 사업 등에서 제공하는 인턴 기회도 활용하고, 외국 자매대학으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지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에게 투자되는 것들을 받은 다음 나중에 그만큼 사회에 돌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보장된 미래’가 제공된 적은 없다. 현재는 늘 궁핍했고 미래는 늘 불안했다. 그렇게 가난에 찌들어 살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에 찌들어 산다는 느낌이 든다. 흔히 하는 말로 신체 건강하고, 대학교육 받고 있고, 또 대학에서는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고, 그리고 백만장자 노인네도 부러워할 소중한 시간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취직 걱정이 우리를 옥죄어 와도 그 때문에 현재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지 말자. 아무리 금수저들이 대학 입학과 성적평가에서 특혜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분노가 우리에게 발전적인 노력의 동인으로 작용하게 만들자. 만에 하나 불만만 토로하는 소모적 감정으로 발산되고 만다면 결국 우리 손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현재가 던져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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