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계절이 지나가고 따뜻한 계절이 찾아왔다. 매번 곁을 스치던 바람의 온도지만 스무 살의 시작을 알리는 만큼 특별한 봄이었다. 청춘의 절정이라고 믿어왔던 스무 살, 하루하루가 온 감정의 결정체였다. 워낙 예민한 터라 늘 그래왔지만, 검은 파도뿐이었던 19살과는 달리 처음 보는 색깔의 파도가 나를 감싸왔다.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빛깔이었다.

  한순간이었다. 네가 나의 모든 일상을 뺏어가기까지. 처음엔 공허함을 느낄 새 조차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너의 이름을 보면 너의 얼굴을 떠올렸고,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너의 미소를 상상했다. 그러다 살살 잠에 빠지면 꿈속에서 설탕 같은 네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깨면 몽롱한 채로 나만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곤 했다, 감히.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도 겨울도 아닌, 한봄의 꿈이었다. 꽃에 물을 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새드 엔딩으로 끝나버린 모노드라마였다.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따뜻함에 취해 한껏 웃는 얼굴이어서, 한기로 가득 찬 네 얼굴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번도 내 이름을 먼저 불러준 적이 없는 너를 깨닫고 나서부터 봄은 내게 더 이상 봄이 아니었다. 그저 봄날의 입김에 속은 거라고 어제의 나를 원망할 때만 본연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 사이에서 더 예쁜 미소로 웃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나의 청춘은 그만큼 시들어갔다. 봄결 가득한 사진에 담긴 너의 한 손에는 꽃잎 하나, 다른 한 손에는 내가 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손 하나.

  너의 하나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는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수 백 번 다짐을 하면 수 천 번 무너져 내렸다. 이미 나는 온통 너였다. 네가 희미해지길 바라며 감각에 있는 모든 흔적을 지웠다. 지우면 지울수록 더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너의 자취가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다 지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까지 사랑해볼 것이다. 오늘의 한계를 기억할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약한 상태에서 가장 강하게 사랑할 것이다. 혼자 하는 사랑의 끝을 빨리 만날 수 있도록 감정을 쏟아낼 것이다. 끝이 보일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너를 사랑하기로 했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