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6.4 목 10:11
상단여백
HOME 충대신문 문화·문예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백경원 | 승인 2016.09.26 16:17|(1118호)

 

  차가운 계절이 지나가고 따뜻한 계절이 찾아왔다. 매번 곁을 스치던 바람의 온도지만 스무 살의 시작을 알리는 만큼 특별한 봄이었다. 청춘의 절정이라고 믿어왔던 스무 살, 하루하루가 온 감정의 결정체였다. 워낙 예민한 터라 늘 그래왔지만, 검은 파도뿐이었던 19살과는 달리 처음 보는 색깔의 파도가 나를 감싸왔다.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빛깔이었다.

  한순간이었다. 네가 나의 모든 일상을 뺏어가기까지. 처음엔 공허함을 느낄 새 조차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설렘의 연속이었다. 너의 이름을 보면 너의 얼굴을 떠올렸고,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너의 미소를 상상했다. 그러다 살살 잠에 빠지면 꿈속에서 설탕 같은 네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깨면 몽롱한 채로 나만이 아닌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곤 했다, 감히.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도 겨울도 아닌, 한봄의 꿈이었다. 꽃에 물을 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새드 엔딩으로 끝나버린 모노드라마였다.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따뜻함에 취해 한껏 웃는 얼굴이어서, 한기로 가득 찬 네 얼굴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 번도 내 이름을 먼저 불러준 적이 없는 너를 깨닫고 나서부터 봄은 내게 더 이상 봄이 아니었다. 그저 봄날의 입김에 속은 거라고 어제의 나를 원망할 때만 본연의 의미를 가질 뿐이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 사이에서 더 예쁜 미소로 웃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나의 청춘은 그만큼 시들어갔다. 봄결 가득한 사진에 담긴 너의 한 손에는 꽃잎 하나, 다른 한 손에는 내가 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손 하나.

  너의 하나 그 무엇도 가질 수 없는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수 백 번 다짐을 하면 수 천 번 무너져 내렸다. 이미 나는 온통 너였다. 네가 희미해지길 바라며 감각에 있는 모든 흔적을 지웠다. 지우면 지울수록 더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너의 자취가 더 아프게 할 뿐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다 지쳐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때까지 사랑해볼 것이다. 오늘의 한계를 기억할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약한 상태에서 가장 강하게 사랑할 것이다. 혼자 하는 사랑의 끝을 빨리 만날 수 있도록 감정을 쏟아낼 것이다. 끝이 보일 때까지만, 딱 그때까지만

너를 사랑하기로 했다.

백경원  -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05-764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  대표전화 : 042)821-6141  |  팩스 : 042)821-72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금영
사장 : 이진숙  |  편집인, 주간 : 이금영  |  충대신문편집국장 : 김동환  |  충대포스트편집국장 : 이해람  |  충대방송편성국장 : 성민주
Copyright © 2011-2020 충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