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벽장 속에서 산다는 것

 

  성소수자 중 벽장에서 나오지 못하거나 자의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벽장이란 자신의 지향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상의 벽장 안에 숨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나는 벽장 레즈비언이다.
  태생적으로 겁이 많게 태어난 것 일수도 있지만 길지도 않은 삶을 살며 나는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중학생 때였다. 첫사랑을 시작했을 무렵 나는 걸그룹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반 친구가 그걸 듣고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너 레즈야? 우윽 더러워”. 그리고 그 주위 아이들의 반응이란, 심지어 은근한 따돌림마저 있었다.
  그 때의 기억은 어렸던 내가 나의 지향성을 본능적으로 숨기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뒤에서 킥킥거리고 웃으면 불안해한다. 꼭 그 날의 아이들 같아서, 몸을 움츠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빠져나온다. 정말 짧은 기간이었는데 나는 이미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와서 성소수자 동아리를 찾아다녔다. 물론 그 때는 생기지도 않았던 때라 찾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큰 학교에 퀴어동아리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도 받았었다. 그 후에 한 레즈비언 어플에서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입을 하게 되었다. 이게 내가 처음으로 한 벽장 탈출 도전이다.
  또, 개강 전날 동아리원들과 만나 학교에 인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다. 전날인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조심해야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너무 즐거운 경험이 됐다. 내가 학교를 활보하며 퀴어동아리 홍보포스터를 붙이다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단과대 건물 안에 붙이고 올 때는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음날 동기들이 붙여진 포스터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조용히 하는 얘기를 듣기만 하고 있었는데, 교회를 다니는 친구가 이런 사람들 주위에 있을 것 같아서 말을 함부로 못하겠다고 하더라. 속으로 어찌나 찔렸던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는거지 라고 웃으며 얼버무렸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심장이 그래 동기들아 내가 그 사람이야, 너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야 라며 외치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 전공특성상 과 사람들이 알면 안되기에 조심해야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당당해 지고 싶다. 내 지향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날이 오게 되기를 바란다. 나부터도 천천히 학창시절 친구들부터 알려가야겠다. 이들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시간이 지나 의식이 발전할수록 지지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러길 바란다. 꼭 미래의 내가 떨지 않으며 지향성을 말하게 될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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