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

  어릴 적 헤르만 헤세의 어린이판 『데미안』을 읽었다. 책에 쓰인 데미안의 일화 중 인상 깊은 부분이 있다. 데미안은 한 수업에서 친구인 싱클레어의 옆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업은 지정석이었고 둘의 자리는 떨어져 있다. 그래서 데미안은 매 수업시간마다 자리를 조금씩 옮겨 앉으며 점점 싱클레어의 옆자리로 다가갔다. 수업이 몇 회 진행된 후 마침내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옆자리에 앉게 됐다. 교사가 이상함을 느끼고 데미안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면, 데미안은 교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쳐다봤다. 데미안은 그렇게 학기 내내 새로운 자리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기자는 데미안의 ‘자리 옮기기’를 굉장히 창의적이라고 생각했고, 곧바로 이를 따라했다. 숙제를 해가지 않았을 때 발표자를 찾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이를 실행해봤다. 최선을 다해 자신감과 기타 무언의 힘을 눈빛에 눌러 담았고 당당함도 보여주려 애썼다.
  원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든 숙제를 해가지 않은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든, 무엇을 이루고자 할 때는 행동을 해야 한다. 목표가 크다면 누군가의 눈을 노려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일종의 각성 상태여야 하고, 목표에 대한 생각으로 온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이루기 어려운 목표일수록 노력은 수고스럽다.
  기자는 확신을 갖는 것으로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대해 고민할 때에도 스스로 그 고민의 결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도 확신의 문제일 수 있다. ‘다 잘 될거야’ 같이 막연하고 소망적인 확신을 갖으라는 말이 아니다. 돈이나 시선 등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겠다는 확신,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거야’ 같은 구체적인 것이 좋다.
  누구나 한번쯤 ‘된다고 생각하면, 정말 이루어집니다’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자도 입시를 준비하며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그 말이 가진 설득력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히 스스로에게 이해시킬 순 없었는데, 이젠 기자의 방식으로 그 말이 가진 확신의 힘을 안다. 효과가 있다. 구체적으로 되뇌고 마음먹으면 이뤄진다.
확신을 갖는 문제는 오로지 스스로에게 달려 있는 일이다. 내가 가진 몸과 정신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다. 물론 환경도 중요하긴 하다. 출발선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환경도 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자수성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엔 최적이다. 어려운 환경에서의 성취가 훨씬 극적이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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