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대신문 일동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30여년을 충대신문방송사와 함께한 정종원 전문위원은 앞방쌤이라고 불리며 충대신문사에서 아버지같은 역할을 담당해왔다. 우리 학교 졸업생으로 한평생을 학교를 위해 몸 바쳐온 정종원 전문위원은 금년 8월을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난다.

 1. 충대신문방송사에서 일한지 어언 30년이 다 됐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저에게 충대신문은 저의 청춘을 불태운 삶의 전부이자 저를 뒤돌아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저예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떠나려니 지나간 일들이 떠오르면서 만감이 교차하네요. 이제 정리할 시점이 왔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2. 우리 학교 입학 이래 학교와 일생을 함께했는데 전문위원이 보는 우리 학교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충남대학교는 자존감이며 애증의 대상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키워준 모체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릴 때면 마음을 아프게하기 때문이죠.

 3. 전문위원님은 학부생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복학 후 2학년 때 국어국문학과를 배정받아 국문학도로서 무언가 뜻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기저에 민중의 삶을 담고 있는 탈춤연구회를 만들기로 했어요. 뜻있는 후배들을 규합해 탈춤연구회를 만들었고 초대회장직을 맡았었죠. 그러다보니 당시 시위를 주도하는 소위 문제 학생 집단으로 여겨져 유신정권에서는 좋아하지 않았던 학생이었어요.

 4. 충대 신문사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건가요?
 저는 1981년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광고회사에 입사하면서 3년 동안 대학 신문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그 인연으로 1984년 10월 우리 학교에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문방송사에서 31년 8개월 동안 충대신문, 충대방송, 충대포스트 학생기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일했죠.

 5. 충대신문 전문위원으로서 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적은 언제였나요?
 글쎄요. 500호 이상을 발행하면서 뿌듯했던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매 호가 소중하고 아쉽죠. 기사가 나가고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것들이 고쳐질 때 ‘아 신문을 잘 만들었구나’하는 보람을 느껴요.

 6. 전문위원님이 발행한 충대신문 중 가장 기억에 남은 호와 기사는 어떤 것인가요?
 저에게 충대신문 모든 호는 소중해요. 기억에 남지 않을 정도로 쉽게 만들어진 신문은 없어요. 그 중 좋은 기억으로 남는 신문을 꼽는다면 1000호가 기억에 남아요. 왜냐하면 ‘한국의 미래를 전망한다’라는 대 주제 하에 각 분야 전문가 여덟 분의 특별 기고를 받아 신문을 발행했기 때문이에요.
 반면 안 좋은 기억으로는 87년 5월에 발행한 608호로 ‘교수의 학생 구타사건’에 대한 기사예요. 기사 내용 중 당사자의 실명이 기명돼 신문을 배포하지 못하고 이름을 지우느라 기자들과 사무실 직원들이 1주일간 작업을 했어요. 기사 중 3곳에 실명이 표기되어 2만 2천부 즉 6만 6천번이나 지우게 돼 진절머리가 났어요. 이제는 그 이름만 들어도 기억이 되살아나 아주 섬뜩해요. 그 외에도 정보당국과 신문사 사이의 문제로 경찰서를 출두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죠.

 7. 충대신문 전문위원으로서 일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언제였나요?
 매호 신문을 제작하는 것도, 예산이 부족해 낡은 컴퓨터와 방송기기를 교체해주지 못할 때 너무 안타까워요. 특히 기자들이 한창 예쁘게 꾸미고 싶은 나인데 밤샘 작업으로 피곤에 찌들어 퀭한 얼굴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파요.
 내부적으로 힘들때는 신문 제작과정에서 학생기자와 학교 측의 입장이 대립할 때예요. 가장 난감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중간에서 서로의 입장차를 원만하게 좁혀 해결할 때까지 잠도 못자고 식욕도 떨어져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았어요.
 외부적으로는 학내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신문 제작과정에서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는 거예요. 사건 발생 초기에는 신문사 내부는 마치 폭풍전야처럼 조용하고 잠잠하지만 그 후로는 후폭풍에 시달리죠. 왜냐하면 학내문제의 발단원인부터 전개과정, 해결과정 등을 정리하고 정확하게 서술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이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은 왜 이미 다 끝난 일을 신문에서 문제를 확대재생산하려 하느냐고 원망을 해요. 그렇다고 신문에서 사실을 외면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인데 말이죠.

 8. 어떤 충대신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나요?
 저는 충대신문의 역할은 충대인의 공론의 장이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카데미즘을 추구해야 한다는 학교 측의 입장과 저널리즘을 추구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입장이 줄곧 부딪쳐 왔어요. 그러다보니 많은 대학 신문이 지금도 휴간을 거듭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어요. 우리 충대신문도 민주화 요구가 정점에 다다랐던 91~93년은 잠시 휴간을 하기도 했어요. 당시 기자들은 편집권사수투쟁을 명분으로 총장실을 점거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독자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면 서로 주장만 앞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러한 입장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학교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신문을 만들어야한다는 신념으로 중간자적 입장에서 노력해왔어요.

 9. 그동안 신문 발행을 위해 노력한 충대신문 구성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그간 부끄럽지 않은 충대신문을 만들기 위해 때로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고 매번 밤을 새면서도 꿋꿋이 이겨낸 전·현직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요. 매번 신문을 제작하면서 애처롭게 지켜봤지만 많은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하기도하네요. 덧붙여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지도해 주셨던 전·현직 주간교수님들과 지도교수님들께도 감사드려요.
 또 우리 학교 구성원들에게 지금까지 좋은 모습으로 지켜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충대신문의 기사로 인해 사적으로 불편한 일을 당하신 분이 계셨다면 개인적으로도 미안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10. 앞으로 충대신문이 가야할 행보에 대해 한마디 해주세요.
 제가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우리 충대신문의 현재 방향은 잘 잡고 항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충대신문은 정론직필을 해야 하는 역할이 중요하지만 학교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성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을 기록해 나가는 역할도 보강해 나갔으면 해요. 이 일은 학교 경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학교의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11. 편집국에 하고 싶은 당부가 있나요?
 현재 기자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독자들이 바라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잘 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욕심을 낸다면 취재할 때 보다 철저하게 사실을 확인하고 비협조적인 취재원이라도 물러서지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취재원 앞에서 움츠러들지 말고 예의를 깍듯이 지키되 당당하게 취재했으면 해요. 덧붙여 신문사 내부에서 서로의 의견이 상치할 때는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의견조율이 될 때까지 대화로 풀어냈으면 해요.

 12. 퇴직 후에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가요?
 퇴직 후 할 일에 대해 큰 계획은 세워두지 않았어요. 작은 일이지만 저는 5년 전부터 시골에 1천여 평정도 매실나무를 심고 주말마다 가꿔 왔어요. 금년까지는 수익이 안 나겠지만 내년부터는 기대 해보려고요. 수익이 나면 수익 전액을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쓰고 싶어요. 이 일을 말로 꺼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에게 꼭 해내라는 부담을 주기 위해 하게 됐어요.

  충대신문방송사라는 이름아래 수많은 기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선생님은 우리에게 교장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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