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걷다

 

김하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4)

 

 나는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들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삶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선택이라던 어떤 철학자의 말을 빌려서, 대답을 꺼내기 전 우선 건배나 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잔을 들어올렸다. 호기심 가득했던 눈동자들이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것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친구들 모두 삶을 꾸려나가는 것만 해도 벅찼을 터였다. 싱거워진 분위기를 위해 다들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는 참에, 병철이 제게 주목하라는 듯 손을 치켜 올렸다. 모두 병철을 쳐다보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들 주먹으로 그의 어깨에 한 대씩 뻗었다. 고민 있는 사람 있느냐고 묻는 녀석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요즘 시대, 아니 우리의 조상들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다들 장난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웃음이었다. 오랜 친구들이었기에 이내 다들 저마다의 고민을 풀어놓았다. 그중 단연 압도적인 고민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연애 시절에는 없었던 아내와의 다툼이라던가, 경제 침체로 인해 겨우 잡은 일자리조차 다시 빼앗길 위기라던가, 하는 전형적인 현재 이십 대 후반의 고민이었다. 다들 한 마디씩 하는데 나만 아무 말이 없으니 나는 다시 눈동자들 사이에서 갈 곳 잃은 나그네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나는 하릴없이 입을 열었다.
 “나 일 그만두려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동자들은 무섭게 나를 몰아붙였다. 어떻게 잡은 일자리인데 벌써 그만두느냐는 푸념 섞인 비난이었다. 아직 너희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왜 그만두려고 하는지를. 듣고 나면 더 까무러치겠지. 남들은 일자리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너는 고작 그런 이유로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다니, 하면서. 나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사실 그만두려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나날들에 대한 불안감이랄까. 어린 시절엔 꿈이 많아 뭘 선택해야 할지 망설였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꼈다. 삶이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것을.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 음식을 꾸역꾸역 소화해내는 위장처럼 사는 게 삶이란 걸 나는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곳에서의 미래는 더욱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적은데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일거리는 컨베이어 벨트에 한꺼번에 쏟아 나오는 듯했다. 마치 기계가 된 것처럼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내 삶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런 게 삶인가.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을 하는 동안 친구들의 의견은 두 동강으로 갈라진 상태였다. 내가 맡은 일을 계속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네모난 테이블에 앉은 우리는 나를 중심으로 정확하게 갈라졌다. 공교롭게도 나는 테이블의 반, 그러니까 정중앙의 자리에 앉은 모습이었다. 고민의 당사자인 나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한참 동안 공방전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이야기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됐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모두 아내와 자녀들이 있었다. 오직 나만이 가장 늦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며,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었다. 침 튀기며 의견을 내던 친구들이 갑자기 부러움을 표했다. 나는 친구들 몰래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어차피 돌봐야 할 가족도 없으니 어떻게 살든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은 진욱이 나보고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물었다.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나는 바로 대답했다.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거나 불투명한 미래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지 그냥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게 싫을 뿐이었다. 혼자라면 할 수 있는 게 무한했다. 굳이 남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한몫했다. 나는 부러움과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에게 한 달 내로 다른 일을 알아보겠노라고 말했다.
 제때 밥을 챙겨먹어야 힘이 난다는 박 부장은 문 옆에 대롱대롱 달려 있는 종을 흔들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작업보고서를 적다가 저장을 누르고 컴퓨터를 절전모드로 돌렸다. 오늘 밤까지 보고서를 올려야 했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었다. 부장과 팀장을 시작으로 실내의 직원들이 밖으로 나갔다. 나는 사무실 내부를 비추는 불을 끄고 문을 잠그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그때 현장에서 일하는 인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밥 먹으러 안 가느냐는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나는 사무실 키를 그녀에게 줬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부장이 말하자 다들 복창하며 수저를 들었다. 처음엔 쩝쩝거리는 소리만 들리던 식당에 하나둘 자리를 비우자 금세 말소리로 바뀌었다. 공적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조용히 일에만 집중하던 사람들이 비교적 휴식의 공간이 오자 긴장이 풀린 것이다.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몇몇 남자 직원들은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를 빼내며 나라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여자 직원들은 커피를 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티브이에서 아나운서가 속보라면서 사건을 전했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외국인 노동자 살인 사건이었다. 애초에 주기로 한 급여보다 작은 데다 과한 업무로 혹사당했던 노동자가 불만을 품고 계획적으로 저지른 살인사건이었다. 아나운서는 노동자가 그 회사의 사장과 차장 등 직원 여러 명을 흉기로 찔렀고, 그로 인해 사장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에서는 곧 다른 기사로 화젯거리를 돌렸다. 남자 직원들은 별 일도 다 있다면서 밖으로 나갔고, 여자 직원들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저들끼리 소곤거렸다. 외국인 노동자 살인사건이라…… 나는 방금 들은 뉴스거리를 천천히 곱씹었다.
 여섯 시 정각을 조금 넘기자 부장이 종을 울렸다. 수고했다고 말하면서 다음 주부터는 야근이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나저나 왜 회사는 제 시각에 끝내주지 않는 걸까. 십분 내지 이십분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나는 일을 해서 하루를 보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사무실을 나왔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멀리 정류장의 불빛이 보였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정류장 밖에까지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비집고 들어가 끝줄에 섰다.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정차했다. 나는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이 근방은 온갖 공장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퇴근길 마을버스에 오르면 마치 다시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상상의 끝에서 나는 오소소 소름 돋은 팔을 쓸어내렸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한참을 갔다. 창밖을 보니 하나둘 빗방울이 창을 향해 떨어졌다. 그렇잖아도 사무실에 널린 게 우산인데. 나는 미리 날씨를 살피지 않은 것을 원망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멀리서 나무 밑에 서 있는 네다섯 명의 무리가 나를 쳐다봤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올수록 그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들을 돌아봤다. 자세히 보니 외국인이었고 옷을 산지 오래된 것처럼 너덜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뭔가 짜증이 솟구쳤다. 그렇지 않아도 퇴근길에 우산 없이 비를 맞는데다가 외국인의 조롱까지 받으니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틀어 무리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순간 낮에 본 뉴스를 떠올렸다.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게다가 예전에 어떤 외국인은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는 소문을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들을 지나쳤다. 집으로 가려면 삼십 분을 돌아가야 하는 거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빗물 때문에 더욱 몸이 쳐졌다. 나는 세면을 하고 나서 침대에 몸을 뉘였다. 걸어오는 내내 집에 가면 바로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집에 오니 이를 데 없이 편안했다.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문득 낮과 저녁에 차례로 본 뉴스와 외국인이 생각났다. 순간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품에서 사랑 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왠지 기분이 숙연해졌다. 이내 고개를 저어 감정을 털어냈다. 마냥 감성에 찌들어 살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이 달아나기 전에 서둘러 눈을 감았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불을 켜는 게 내 임무였다. 그리고는 곧장 사장의 방에 들어가 라디에이터를 켠 후 일할 준비를 했다. 곧 직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여러 번 열렸다 닫힌 다음에야 완전히 닫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일을 했고, 밥을 먹고도 쉬는 시간까지 자동 반납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마신 물도 없는데 괜히 소변이 마려웠다. 나는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화장실을 갔다. 눈치 없는 물줄기가 요란하게 빠져 나왔다. 물을 내리고 급하게 자리로 돌아왔다. 쉬는 시간인지 다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가 커피 한 잔을 마시려는데 무리들 틈으로 인희가 보였다. 무리들이 웃고 있는데 반해 인희는 웃지도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어중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몇몇 직원들이 실내가 울리도록 껄껄대며 그녀의 팔을 툭툭 쳤다. 그녀는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았다. 그녀 바로 옆에 있던 직원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닌 듯했다.
 “저 이만 가 볼게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인희가 우물쭈물하며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비웠다. 직원들은 어서 가 보라며 그녀의 등 뒤를 떠밀었다. 나는 종이컵 안에 남아 있던 커피를 전부 입에 털어 넣었다. 목구멍에서 달짝지근하면서도 역한 향이 났다.
 인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직원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묻지 못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공장 일이 끝나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한다거나 여관바리를 한다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런 일을 궁금해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사는 건 다 힘든 일이다. 직업이나 계층 할 것 없이 모두가 삶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구태여 남의 사생활을 들추거나 꺼내어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슬쩍 자리로 돌아왔다.

 누가 송곳으로 내 배를 찢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입을 틀어막았다. 식은땀이 났고 그걸 닦을 여유는 없었다. 갑자기 배가 아픈 이유가 뭘까. 나는 곰곰이 전날 밤 집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렸다. 사실 별 일은 없었다. 사치스럽게도 슬픈 영화를 보고 잠들기 전 밥을 먹은 것뿐. 지독하게 슬픈 영화였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일했던 여자라는 것, 재판장에서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사람들.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자 공복감이 들었다.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끓인 후 허겁지겁 먹었다. 혹시 이것 때문인가.
그때 어김없이 부장이 종을 흔들었다. 직원들이 밖으로 나갔다.
 “문 잠가.”
 부장이 손짓했다. 나는 부장 앞으로 갔다.
 “저…… 오늘은 밥을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는 되물음도 없었다. 부장은 알겠다며 고개를 흔든 뒤 식당으로 갔다.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봄인데도 몸에 열이 났다. 표가 안 나게끔 에어컨을 틀었다. 그러고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탈진한 선원처럼 의자 위에 널브러졌다. 그때 딸깍 문이 열렸다. 인희였다. 그녀도 나를 보고 적잖이 놀란 듯했다. 다시 나가려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가 엉거주춤 서 있는 상태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중학교 삼학년 이후 여자와 단둘이 있을 때면 다리를 떨었다. 텅 빈 교실에서 의자 위에 앉아 생애 처음으로 고백을 했고, 혼자 하던 사랑이 둘이 하는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때 다리가 눈치 없이 덜덜 떨렸다. 곧바로 여자애의 손이 내 뺨을 후려쳤고 그렇게 첫사랑이 끝사랑이 돼 버렸다. 그때부터 여자와 단둘이 있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서였을까. 인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등이 젖는 듯했다.
 인희가 내 옆으로 와 앉았다. 나는 책상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 한번 꼬았다. 그러고는 몸을 의자에 깊숙이 기댔다. 그때 그녀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사탕이었다. 그러면서 달력을 가리켰다. 삼월 십사일이었다. 누구에게도 줘본 적 없는, 그리고 받아본 적도 없는 사탕에 나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사탕을 쪽쪽 빨고 있으니 우리는 영락없는 소년과 소녀였다. 어느새 떨던 다리도 진정이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고, 그녀는 나에게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왔다고 했다. 몽골이면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있는 곳인 듯했다. 그곳에서 한국까지 오려면 꽤 긴 시간을 소비해서 온 셈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가 사는 몽골이란 곳에 대해서, 그녀의 가족, 친구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숨기지 않고 이야기를 해줬다.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점심에 인희와 단둘이 나눈 이야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몽골이라면 광활한 대지를 정복한 칭기즈칸의 나라인가. 말을 타고 유랑하는 부족민인가. 그 넓은 곳을 돌아다니다가 비좁은 땅덩어리에 그것도 공장이라는 공간에 갇혀버린 걸까. 그녀는 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나는 나라에서부터 인희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했고, 조그만 연민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단지 알량한 지식으로 동정을 하고 안쓰러운 시선을 보내는 건, 그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밖에 더 될까. 나도 일개 직원이며, 도와줄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더 생각해봐야 그것의 연장선일 게 분명했다. 내일을 위해 지금은 자야할 때였다.

 추석까지 한 달 정도가 남은 시점에서 정시 퇴근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생활 패턴이 바뀐 지는 이미 오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는 것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야식을 먹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을 일상답지 못한 나날들로 보냈다. 주로 집은 잠을 자는 공간이 되었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속은 안 좋았지만 그런 덕분에 인희와 함께 낮이라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낼 수 있었다.
 점심에 밥을 먹지 않는 대신 인희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몽골인 노동자였던 아버지와 고아원 출신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딸이었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은 받을 수 없었으며, 몽골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사람이 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그녀의 그런 사정에 대해 어떤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원래 그랬듯 그저 웃었다. 그녀가 중학교 삼학년이 되던 때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고 그때 그들은 그녀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살게 될 때와 어머니와 함께 살 모습을 천천히 머릿속으로 그렸다. 아버지를 따라가면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겠지만 정신적으로는 고달플 것 같았다. 어머니와 살면 가난하게 살 테지만 마음은 편안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세 번째 선택을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살기로 한 것이다. 덤덤하게 말을 마친 그녀는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게 최선이었으니까.
 “자장면, 좋아해요?”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보려 음식 이야기로 화두를 돌렸다. 아무래도 몽골에서 살다가 이곳에 온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먹는 게 적응이 안 될 터였다. 그래서 인희가 점심을 먹지 않나 싶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을 사이에 둔 사람들이라면 자장면이 제일 적당할 것 같았다.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아직 시간 좀 남았으니 얼른 시켜먹어요.”
 곧 배달원이 왔고 나는 돈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인희가 자신이 금방 갔다 오겠다며 돈을 달라고 했다. 나는 거스름돈을 생각하며 금액에 맞게 줬고,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금방 갔다 오겠다며 나간 그녀는 오 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그녀가 포장된 음식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자장면을 들이켰다. 그릇을 남김없이 비운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간만에 느낀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앞니에 자장 소스를 묻히고 이― 하며 철 지난 개그를 선보였다. 그녀는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공장 안에서 나는 여전히 뛰어다녔고 그로 인해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사장이 직원에게 시키는 일은 언제나 한도 초과였다. 직원들은 법인 카드나 그렇게 쓰게 해달라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들의 푸념을 뒤로 하며 잠깐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일하는데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겠지. 담뱃잎에 불을 붙였다. 힘껏 필터를 빨아들이자 담배 끝이 벌겋게 타들어갔다. 공장 입구 근처에는 단독 주택이 조금씩 붙어 있었는데 그중 한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걸 보니 집 생각이 났다. 컨테이너에 기대 그 모습을 보는데 공장 입구에서 웬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나는 천천히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실눈을 뜨고 입구를 내려다보았다. 왠지 연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한동안 포옹을 하는 듯했다. 나는 괜한 질투심에 자리를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언제쯤 일을 그만 둘 거냐는 병철의 말을 뒤로 한 채 잔만 만지작거렸다. 아직도 정해진 건 없었다. 반쯤 남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문득 인희가 떠올랐다. 그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잠을 자고 있을까, 아니면 침대 위에 누워 떠나온 고향을 생각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사람들 말처럼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고 있을까. 상상은 정화 작업 없이 마구잡이로 솟아 내 의식의 수면 위로 둥둥 떠다녔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설령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 병철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씨익 웃어보이고는 잔을 들었다.
 “그래서 일 그만 둘 거야, 말 거야?”
 “아직은 후자야.”
 “아직이라니, 더 하겠다고? 그 거지 같은 곳에서?”
 나는 병철을 향해 쉿, 하고 검지를 붙였다. 공장에서 꽤나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이 나라는 좁다. 두세 다리만 건너도 서로 아는 사이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사실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어떻게 아는데?”
 “딱 보면 척이지.”
 구사일생으로 잡은 직장을 그만두려고 했다가, 다시 일을 한다고 말하는 건, 그 사이에 여자가 끼어 있는 게 구십구 퍼센트 확실하다고 병철은 말했다. 나는 그게 왜 확실한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내가 인희에 대해서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갖는다는 게 실감나지 않기도 했고, 어렵게 말한 속내를 별 것도 아닌 일로 장난스럽게 넘기고 싶진 않았다. 나는 병철에게 여태까지의 일을 털어놓았다. 주위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크게 웃던 녀석은 한 마디 했다.
 “그냥 관둬, 인마.”

 말 위에 앉아 광활한 벌판을 바라본다. 하늘과 땅 그 사이로 나와 내가 타고 있는 적마 한 마리뿐이다. 그때 지평선 너머로 자그마한 먼지가 인다. 나는 말의 등을 걷어차 앞으로 달려 나간다. 먼지 사이로 한 마리의 백마가 나타난다. 그 말을 모는 사람은 인희다. 말을 세우고 그녀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한다. 세-응 베-노. 몽골어로 인사를 주고받은 후 우리는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는다. 어떻게 왔는지,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무언의 교감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그러다가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맞부딪힌다. 우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아직 가라앉지 않은 먼지들 틈으로 말을 박찬다.

 출근하자마자 더부룩한 속을 붙잡고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화장실 앞에서 인희와 마주쳤지만 인사할 기력도 없었다. 문을 잠그고 바지를 내리자마자 댐이 터지듯 대변이 쏟아져 나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뭐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의문이다. 항문 운동에 집중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일분 단위로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초조해졌고, 결국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화장실을 나왔다. 나는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물품창고 앞에서 쭈그려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눈썹을 찌르는 머리칼 사이로 땀방울이 갈 곳 잃은 나그네처럼 아무렇게나 흘러내렸다. 그때 작업장에서 누군가 나왔고, 나는 재빨리 창고 뒤로 몸을 숨겼다. 형체가 가까워졌고, 그것은 인희란 걸 알아차렸다. 나는 쭈뼛거리며 인희 앞에 섰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디, 가요?”
 인희는 수줍은 표정으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조그만 두 손을 모아서 흰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물을 새도 없이 봉투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좀 전에 화장실 가는 모습이 아픈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건넸다.
 작업장으로 돌아오니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쉰 후 물품을 들고 열심히 사포로 문질렀다. 일을 하면서도 이따금씩 사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일을 하면 퇴직금을 받고 나갈 수도 있었고, 다른 곳으로 이직할 때 경력이 되기도 할 테니까 버티려는 쪽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작업장 구석에서 김 주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나를 부르는 목소리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김 주임은 내 앞으로 오면서 침을 튀기며 화를 냈다. 하라는 일은 다 했는지, 얼마나 했는지에 대해서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군대에서 배운 게 하나 있다. 돌격해오는 총칼을 그대로 비껴가도록 하는 것이다. 몇 마디의 말은 귓전에 들러붙었고, 그 이외의 말은 그대로 흘려보냈다. 작업장에서의 소음도 어느 정도 한몫했다. 김 주임은 잠깐 돌아서서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얘는 어디 간 거야.”
 나는 귓전에 들러붙은 몇 마디의 말을 털어내려 귓구멍을 팠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김 주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문득 인희가 떠올랐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응? 아니야, 네가 알 일은 아니고.”
 김 주임은 새로 가져온 작업지시서를 내밀었다. 외부 업체에서 주문한 양식이었다. 나는 뒤돌아가는 그의 등을 물끄러미 보았다. 몇 발자국 걸어가던 그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지금 인희씨 어디 갔는지 찾아 와.”
 그러더니 그는 작업지시서를 도로 가져갔다.
 땀을 흐트러뜨리며 현장을 뛰어다닐 때는 이 공장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시키는 일이 많아서였는지도 모른다. 곳곳에 목표물이 있었으니까. 지금은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공장 이곳저곳을 누벼야 했다. 나는 곰곰이 인희가 자주 갈 만한 곳을 머릿속으로 짚어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단서가 없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작업장에서만 마주쳤으니까. 그러다 문득 화장실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을 제쳐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봐도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왕 확실한 게 좋으니 직접 가서 내부까지 확인했지만 인희가 어디로 간지는 찾을 수 없었다. 작업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창고 근처를 지나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리는 창고 안쪽에서 나고 있었다. 비스듬히 창문 안쪽을 쳐다봤다. 창문에 낀 먼지 때문인지 내부가 흐릿하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낸 후 들여다보았다. 창고 안에는 박 부장과 인희가 있었다. 박 부장이 그녀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창문에서 눈을 뗐다. 당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망설여졌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눈을 떴다가 감는다. 주위가 어두워진다. 다시 눈을 뜬다. 어디선가 햇살이 비춰든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 창문 하나만 열려 있다.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오소소 한기가 서린다. 방만 빈 게 아니다. 나는―나인지도 모르지만―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창문을 향해 걸어간다. 높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이곳이 어딘지 역시 알 수 없다. 다만 구름 같이 보이는 투명한 수증기들이 어림잡아 발밑으로 떠다니는 것을 보면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인 듯하다. 곧 수증기가 걷히자 언덕이, 말이, 그 위에 탄 사람마저 보인다. 털모자를 썼고 그 밑으로 머리칼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뒷모습만 보일 뿐 좀체 뒤돌아볼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저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도통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생각이 날 듯 말 듯하지만 끝내 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찾아보았지만, 애초에 문 따위는 없었다는 듯 방 안에는 창문만 있다. 뛰어내려야 하나, 아니면 그저 바라만 볼 것인가. 이내 모든 생각을 지운다. 단 하나의 생각을 제외하고. 창문은 활짝 열려 있다. 창틈을 붙잡고 한쪽 다리를 걸친다. 그리고 바닥을 딛고 있던 발을 뗀다……
 그런데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곁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죽어가면서까지 뒷모습을 바라볼 것만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몸은 허공에 떠 있다. 아니, 어디론가로 떨어지고 있다. 두려움에 온몸을 저당 잡혀버린 것처럼, 뛰어내리면서 심장을 방 안에 두고 온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점점 주위가 점점 하얘지면서, 어두워진다, 나는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계속되는 일은 인간을 기계로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같은 모양의 샘플을 만들다가 잠시 쉬기 위해 책상 위에 올려뒀다. 자꾸 눈꺼풀이 감기고 속눈썹이 떨렸다. 갈증이 나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때마침 부장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쉬엄쉬엄 하라며 종을 울렸다. 물 한 모금을 마시기 위해 정수기 앞으로 갔다. 그곳엔 커피를 마시기 위해 몇몇 직원들이 몰려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부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부장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물었다. 부장은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인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부장은 창고에서 인희와 몸을 섞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떠들어댔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직원에게 돈만 주면 얼마든지 하게 해준다고 웃었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를 세면대에 쏟아버렸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수면 위로 튕겨 올랐다. 먼 산을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도 공장이 있겠지. 그곳에는 어떤 풍경이 나타나고 있을까. 그래도 이곳보단 낫지 않을까. 착잡한 마음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더 쓰라렸다. 그때 정문 쪽에서 어떤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엔 웬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옆에는 덜덜거리는 오토바이가 있었고, 배달통도 있는 걸로 보아 중국집 배달부인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는, 인희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짧은 순간 문 앞에서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아픔으로 얼룩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을까. 나는 타들어가는 담뱃재를 툭툭 털어냈다.

출처. https://pixabay.com

 

 충대문학상 소설부문 심사평

 응모된 모든 작품들에서 소설은 이야기를 하는 양식임을 다시 발견한다. 사람들은 얼마나 이야기하기를 갈망하는가를 엿보기도 했다. 소설은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기를 위해 발명되었다. 이야기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건이다. 그것은 소설의 재료로 그것을 구성하면서 한편의 작품은 생성된다.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보는 자의 시선에 의해 달리 전달될 일종의 구성물이다. 들뢰즈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것은 그런 까닭에 이미지이다. 흔히 소설 분석자들은 사건의 배열에 주목하여 그것의 의미와 미학을 논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시선의 위치와 강도는 사건의 의미를 만들고 감정을 조절한다.
 그렇게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 주목하여 응모된 작품들을 읽어나갔다. 그리고 「이사도라 사감의 병원일지」 「은빛날, 핏빛 살」 「꿈을 걷다」를 선별하여 견주어 보았다. 「이사도라 사감의 병원일지」는 사건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작품이다. 서사의 틀 자체가 그렇게 설정되었다. 그런데 들여다보는 보는 사건들이 왠지 가볍고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다. 「은빛 날, 핏빛 살」은 사건이 진정하게 사유된다는 점에서 분명 주목해야 할 작품이다. 소설이 수사학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사유에 있다. 수사가 뛰어나다. 그것은 사건을 깊이 내면화했다는, 그리고 그것을 내부로 받아들일 지적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할 것과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별함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꿈을 걷다」는 사건을 응시하고 해석하며 다른 사건과 결합하여 의미 있는 결말로 향하는 소설의 규약을 잘 따른다. 가끔 상투적인 표현들이 자기 수련을 더 거쳐야 함을 지목한다. 모든 응모자들이 사건은 사유되고 그리고 최종적으로 표현되는 것임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심사위원
민경택(영어영문학과 교수)
                                           송기섭(국어국문학과 교수)

 

 충대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소감

사진. 김하석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지냈습니다. 쓰려고 해도 담아내고자 하는 풍경이 나타나지 않았고, 쓰면서도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도 알 수 없었죠. 그래서 글 쓰는 일을 그만둘까 생각했습니다. 절망적인 나날들이 계속되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눈앞에서 번쩍거렸어요. 생각해보니 제 작품엔 사건이 없었던 거였습니다. 별 거 아닐 수 있는 깨달음이 다시 글을 쓰게 했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상으로 인해 더욱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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