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에 대하여

 

백재열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4)

 

 진미란 눈으로도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미각보다 시각으로 먼저 접하게 되는 음식이 만두에 와서는 할 말을 잃는다. 속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음식이다. 음식은 현대까지 오면서 외적으로도 진화를 했지만 만두는 제 안을 드러내지 않고 내용물만 바뀌어 왔다. 겉으로 화려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세계 3대 요리라는 화려한 중국 음식은 바로 이 투박한 만두 없이는 성립되지 못한다. 본래 만두의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인 진가루(밀가루)는 황제와 황후의 상에 올릴 양만 겨우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최고로 귀한 재료였다. 
 나는 중국집에 가게 되면 만두를 꼭 주문한다. 짜장이나 짬뽕을 주문하지 않아도 만두는 주문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본다. 찜기를 열면 김이 흘러나왔다가 곧 물크러진다. 그 안에는 만두들이 서로 일정한 간극을 두고서 정좌하고 있다. 제 안에 내용물을 두툼하게 품고서. 마치 러시아의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찜기 안의 찜기라는 느낌을 받는다.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면 열기가 터져 나와 입천장과 혓바닥을 데운다. 뒤이어 만두 안의 뜨거운 내용물이 입 안에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야채와 고기를 넉넉히 채우고도 열기까지 온전히 가둬두기 위해선 만두피가 될 수 있는 한 튼튼해야 한다. 만두피가 얇으면 삶는 도중에 만두는 터지고 만다. 반대로 만두피가 두꺼우면 쩍쩍 입에 달라붙기 때문에 식감이 떨어진다. 피가 얇으면서도 내용물이 푸짐한 만두일수록 고급으로 분류된다. 피가 두꺼운 만두는 그보다 낮은 급이다. 이처럼 만두피가 급수를 결정한다. 그래서 만두피는 배추나 메밀가루 등, 다양한 식재료로 만들기도 한다.
 만두의 기원은 중국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 <사물일기> 발췌)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이 남만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노수라는 강가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천둥번개와 함께 광풍이 불어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주위의 장수들이 정벌 중에 죽은 병사들의 넋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남만의 풍습에 따라 사람 머리 마흔아홉 개를 올려 제를 지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본디, 유교 쪽의 사람이던 제갈량은 한낱 풍습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 꾀를 냈다. 사람의 머리처럼 밀가루를 빚어 만든 음식을 상에 올려 제사를 지낸 것이다. 즉, 만두는 죽은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다.
 때문에 만두는 세 가지 의미를 띤 음식이 되었다. 첫 번째는 두부두(頭否頭), 머리이되 머리가 아니고, 두 번째는 의부의(衣否衣), 옷이나 옷이 아니며(만두피를 뜻한다), 세 번째는 인부인(人否人),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만들어진 음식이 바로 만두였다.
 예전에 내가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혹한기 훈련 중 작전지역에서 밤을 새우며 대기한 적이 있었다. 내 전투식량을 어느 간부에게 양보하고도 다시 챙겨 받지 못해 저녁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전투식량은 수량에 딱 맞게 배급된 상태라 여분이 없었다. 어디서 내가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지, 중대장이 내가 있는 지역으로 와서 종이 포장되어 있는 왕만두를 건네주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면서 가버렸다. 겨울밤의 추위는 매웠고 눈까지 내렸다. 나는 떨며 바위에 주저앉았다. 가로등 불빛 너머 어둠은 짙었다. 겨울밤의 밑바닥에서도 왕만두만은 따뜻했다. 추위가 배고픔보다 더 무서운 것인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온기 때문에 나는 차마 왕만두를 먹을 수가 없었다. 가까운 곳에 민가의 불빛이 보였다. 집 안이 따뜻한지 지붕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미칠 노릇이었다. 여기서 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방의 의무가 대체 뭐기에 이렇게 한낱 왕만두의 온기에 의존하며 추위를 쫓아야하나 눈물이 핑 돌았다. 이대로 추위에 맥없이 죽어 가느니 전장에서 장렬하게 죽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등에 메고 있는 총기가 서서히 무거워질 때, 벤치 아래서 고양이 한 마리가 슥 기어 나왔다. 저 아래 민가 쪽에 사는 도둑고양이 같았다. 그 고양이는 나를 응시했다. 경계의 눈초리였다. 나는 암울하고 비참한 기분에 깊이 빠져들어, 그 고양이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는 자유로워 보이는 그 고양이가 정말 부러웠다. 고양이는 눈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한참동안 나를 노려보았다. 조금 뒤,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짧게 울었다. 그러자 고양이가 나온 곳에서 새끼고양이 하나가 기어 나왔다. 새끼고양이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고양이는 계속 나를 경계하다가 곧 새끼 고양이를 뒤따라갔다. 아, 그 광경은 하나의 난해한 문장이 되어 내 가슴에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그 광경······. 그 고양이는 내게 현실에 몰입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강력한 진통제는 바로 몰입이었다. 비 내리는 겨울밤, 추위, 어둠, 인고의 시간,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을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절망하는 사람의 가슴에 스며들어 젖는 광경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절망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어둠을 외면하고 한 줌의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았다. 내가 품고 있는 것들과 내 그늘에 머물렀던 과객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맹렬한 추위 속에서도 만두는 아직도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도 한 줌에 지나지 않는 가로등 불빛은 일말도 흔들리지 않고.  
 지금은 만두의 가치가 상당히 격하되어, 중화요리점에서 덤으로 받는 부식(副食)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만두를 먹을 때면 내 앞으로 그 겨울밤이 떠밀려온다. 왕만두 한 덩이가, 고양이 두 마리가 대체 무슨 거창한 의미를 주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두를 젓가락으로 뒤적거릴 때면 목이 먹먹해지곤 한다.
 원래, 만두란 나 혼자만을 위해 다른 사람을 저버릴 수 없기에 만들어진 음식이다. 이제는 날씨나 내 삶이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 정의할 수 없는 온기, 내면을 스스로 데울 수 있는 따스함으로 다시 한 번 더.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kfoodaddict/6779015132

 

 충대문학상 수필부문 심사평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지혜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수필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성을 특별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문학 양식이다. 올해 충대문학상 수필 부문 응모작들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어 심사를 하는 내내 즐거웠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상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을 그들의 목소리로 들어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다운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자유로운 형식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매력을 발산하는 작품을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응모작 가운데 「고시원일기」와 「2016 서울 나들이」는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우리 시대 청년의 의지를 보여준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의 감정 토로에 그친 점이 아쉬웠다. 이에 비해 「만두에 대하여」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만두에 대한 고사를 통해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깨닫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 있다. 현실은 고단하지만 삶의 따스함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다짐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다만, 의미가 명징하지 않은 문장들을 좀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비유적 표현보다 중요한 것은 명징한 의미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앞으로의 건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윤석진(국어국문학과 교수)

 

충대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소감

사진. 백재열

 지난 4월의 어느 날, 전북 익산의 시립도서관에서 은사인 정은경 문학평론가님의 특강을 들었습니다. 그때, 은사님께서는 문학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이며 문학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은 인간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망각을 돕고 생의 어느 한 순간일지라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도록 환기시킵니다. 은사님께서 일러주신 문학의 본질은 제가 쓰고자 하는 글의 일관된 정의가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습작생으로서 제 문학의 반환점에 섰음을 느낍니다. 문학이란 결코 딜레탕트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베짱이가 노래하듯 한가롭게 시를 짓고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천일 밤 동안 도끼를 목 뒤에 두고서 이야기를 지어내야 했던 세헤라자데처럼 이 생을 걸고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제가 쓸 수 있는 글보다는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제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제가 써야만 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충대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대학생활 동안 동경해온 문학상을 수상하니 꿈같습니다. 정영길 학과장님께 수상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드렸습니다. 학과장님께선 제 어깨를 잡고 빙그레 웃으시며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노곤함과 기쁨과 부끄러움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저는 제 감정을 한 문장으로 뭉뚱그려서 말씀드렸습니다.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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