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를 생각하며?

 

홍장희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20년전 의과대학을 졸업했을 때, 내 나이 27세였다. 120명 의대 졸업생 중에 유일하게 임상 의사가 아닌 기초의학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기초의학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아버지였다. 고향인 충남 예산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임상 의사가 아닌 기초 의학자로의 중대한 결정에 많은 시간과 주변의 조언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라는 나만의 고집이 강할 때였다. 교수가 된다는 것에 대한 사명감이나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4년간 조교 생활, 1년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수생 과정, 대학원 박사 과정을 차근차근 마치고 드디어 2003년 건양대학교에서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 연구 분야는 천연물에서 생리활성 물질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선배 동료 교수님들의 배려로 연구실과 대학원생이 배정되었고, 나름대로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였다. 시간이 흘러 몇 년이 지나고, 또 지나면서 나의 연구분야와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시계추와 같이 반복된 일이 계속되고, 연구분야의 식상함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2007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에 조교수로 발령받았고, 새로운 연구 분야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그 당시 충남대학교병원이 지역임상시험센터 육성 정부 과제에 참여하기 위해 임상약리학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임상약리학 분야는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가 국내에서 최고로 잘 나가기 때문에 1년간 펠로우 과정을 가기로 결정했다. 내 나이 39세였다. 서울대학교병원 앞에 원룸을 잡고 간단한 살림살이만 챙겨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쓸 일이 그다지 없었던 장롱 의사면허증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시기였다.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시험센터는 임상시험이 365일 진행되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가 당직을 서야 한다. 당직하는 날에는 나 혼자 모든 시술을 책임져야 하고 임상시험 참여자 혈관이 막히면 다른 혈관을 찾아서 카테터를 삽입해 놓아야 한다. 처음 3개월간은 미친듯이 일해도 생각한대로 잘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20대 후반의 젊은 의사들과 연구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잘 버텨낼 수 있었다. 1년간 열심히 펠로우 과정을 수료하고 난 후 충남대학교병원 임상시험센터에서 9년동안 열심히 신약개발 임상시험 연구를 수행했다. 2013년 - 2015년까지 2년 동안 임상시험센터장을 역임했고, 국립대병원중 최연소 임상시험센터장이었다. 현재는 나의 연구분야에 대한 고민이나 식상함은 없다. 일이 재미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서 일하고 조율하는 역할이 매일 매일 새롭다. 앞으로도 쭉 이 길을 걸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두 번의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한번은 1995년도에, 또 한 번은 2007년도에 있었다.  앞에 주어진 선택의 기회는 내가 살아온 방식에 따라 막연하게 선택하였다고 한다면, 2007년의 선택은 많은 고민과 주변 어른들의 조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미래 10년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과거 20년의 과정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선택의 기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편견과 고집을 최대한 빨리 벗어 던지고, 나의 멘토나 선배 어른들의 조언을 충실하게 듣고 실행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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