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성진우 기자


 지난 4월 13일 실시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는 국회의 ‘알맹이’ 자체를 바꾸려는 국민의 열망이 표출된 선거였다. 그 결과로 제3당의 등장과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여당의 대패, 그리고 어느 한 정당이 국회를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적절히 분배된 의석수를 보면 역시 우리 국민은 똑똑하다는 믿음이 더욱 굳혀진다. 그런데 최근 국회의 행보를 보면서 20대 국회가 또 다사 ‘껍데기’ 국회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커진다.
 우선 20대 국회 의원회관의 교체 물품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회 사무처는 오늘 개원하는 20대 국회에 맞춰서 의원실 컴퓨터 3000대, 프린터 1500대를 새로 교체했다. 국회 측은 컴퓨터를 2010년 보안용으로 일괄 교체한 뒤 6년이 지나 모두 교체 대상이 돼 새로 구매하는 것이라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발상자체가 여전히 국회는 알맹이보다 껍데기에 가깝다는 걸 반증한다.
 실제로 국회 등 국가기관의 물품은 조달청의 ‘내용연수 고시’에 따라 교체 시기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의 사용기간을 정해놓은 것이지, 기한이 됐다고 물품을 바꿀 의무는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2010년에 구매한 사무용 컴퓨터가 6년이 지났다고 해서 성능이 못쓸 정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게다가 의원실 컴퓨터의 주된 작업은 워드, 엑셀 등 고성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무용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무조건 ‘최신식’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권위주의가 멀쩡한 컴퓨터를 바꾸는 데 국민의 혈세 50억 원을 낭비한 셈이 됐다. 또한 책상, 의자, 서랍을 한 세트로 총 900세트를 포함해 전체 의원실 벽지까지 교체했다는 소식에 국민들은 또 다시 분노하게 된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주고, 계파 투쟁에 국가적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일 잘하는 국회’라면 컴퓨터 정도 매년 교체하는 것에 과연 누가 돌을 던질까.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 속에서 국민의 돌을 그렇게 많이 맞은 제19대 국회가 이제 막 폐원됐다. 어떻게 하면 같은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온갖 돈을 들여 새로운 ‘갑’을 맞이하려는 노력에 열중하는 국회를 보니, 이번 국회의 앞날이 어둡게 그려진다.
 마침내 오늘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폭력이 난무한 18대 국회가 야만스러운 ‘동물 국회’였다면, 국회선진화법으로 쟁점 법안이 수장된 19대 국회는 ‘식물 국회’였다. 물론 19대 국회가 식물국회로 낙인찍힌 원인에 대한 논쟁은 여전하지만, 각 정당과 정당 내 계파 간 갈등·분열로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하지 못한 국회였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이제 20대 국회는 동물·식물이 아니라 진정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사람의’ 국회가 돼야 한다. 즉, 국민들이 이번 국회에 ‘마지막 경고’를 줬다는 걸 명심하고 끊임없는 반성과 경청의 자세로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5년을 책임질 20대 국회에게 진심으로 당부하고 싶다. 국민들에게 필요한 알맹이만 남고 국가를 망치는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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