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

 

곽효원 편집국장

 “우리는 정의를 위해서 일하자.” 신문사 선배와 술자리에서 영화 같은 말을 들었다. 히어로 영화에서나 할법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들으니 웃음이 터졌다. 한편으로는 ‘정의를 위하자’는 당연한 말이 우스워진 현실이 씁쓸하다.
 정의를 논하기에 사회는 녹록하지 않다. 대법원 앞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의 여신상은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본질을  상징한다. 그러나 법조계는 불의로 가득찼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가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법률대리인으로 등장했다. 김앤장은 이전에도 일제 전범기업을 변호해 질타를 받았다. 변호사의 업무라고 하지만 법조인이 추구할 정의와 김앤장의 행보는 멀다.
 학내라고 다를 것은 없다. 교육부의 조사를 통해 우리 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입학전형 과정에서 불공정 입학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가족의 직업이 입학에까지 영향력을 미친 것이다. ‘정도를 걷는 법조인 양성’이라는 우리 학교 로스쿨의 교육목표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정의를 말하는 게 바보 같은 사회다.
 지난 호를 발행하고 가슴 한 켠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연속으로 학내 악습에 대한 기사를 준비했다. 편집국 내에서도 학내 악습을 지나치게 자주 다룬 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심지어 취재 중 제보자 색출까지 이어지자 취재원 보호를 위해 기사 게재를 포기하는 게 맞는 지 고민했다. 고심 끝에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것, 불편하더라도 그 불편을 기꺼이 떠맡는 것이 언론이 추구할 정의라고 결심했다. 과감히 기사를 게재했다.
 신문이 발행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우리 학교 대나무숲에 충대신문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학내 악습 기사가 담긴 충대신문 1면이 좋은 기사는 없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한쪽 면만 보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지적에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해당 학내 악습 기사는 ‘옳지 않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비판적인 기사는 최대한 배제하고, 미담 기사 위주로 신문을 발행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 제기 없이 해당 사안의 입장만 전달하는 기사는 오히려 쉬운 일이다.
 그러나 쉬운 일이 언론의 정의는 아니다. 옳지 않은 일을 옳지 않다고 말하고, 불편한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이다. 보기 좋은 이야기들은 문제 상황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불편함이 정의 추구에 재갈이 될 수 없다.
 이번 학기 들어 진부하리만큼 본질을 이야기했다. 그만큼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지겨운 본질이다. 글을 읽고 있는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정의를 부탁한다. 그리고 불의의 시대가 계속 되고, 불의가 발길에 채이더라도 충대신문은 끝까지 취재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정의를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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