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은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

 정부의 대학교 반값등록금 정책이 실현됐다는 소식이 연일 나오고 있다. 정부는 높은 대학 등록금으로 인한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반값등록금, 학자금대출 등 많은 정책을 시도했지만 일각에선 반값등록금 정책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서울권 일부 대학들이 교내 장학제도를 개편해 성적중심으로 지급되던 것을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필요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올해부터 고려대학교는 성적장학금을 전면 폐지하고 자유·진리·정의(저소득층 지원) 장학금 유형을 신설했다. 고려대뿐만 아니라 이미 일부 서울권 대학은 성적장학금의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화여대는 올해부터 일정 학점 이상 학우에게 주는 ‘우수 2’ 장학금 유형을 폐지했고, 서강대는 가계곤란 학우에게 장학금을 양도할 수 있는 장학금 양보제도를 도입했다. 이처럼 많은 대학에서 성적장학금의 규모를 축소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반값등록금과 같은 대학등록금완화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대학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왜 변하고 있는 것인가?
 최근 이러한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장학금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상호 연구원은 “장학금의 본 취지는 학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들은 지나치게 성적장학금의 비중이 컸다”며 성적장학금이 ‘학문의 수단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전 세계적으로 성적장학금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은 곳은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몇 개 국가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최근 많은 대학이 오래된 관습을 깨고 기회균등의 측면을 강조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율적으로 성적장학금을 축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학교 학우지원팀 안석 차장은 “서강대의 경우 성적장학금과 복지장학금 두 장학금 중 복지장학금의 가치가 더 우선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 차장은 “성적장학금은 명예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성적은 성적표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성적장학금을 지급하더라도 명예로운 성격이 중요한 것이지 금액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복지장학금을 확대하는 것이 장학금의 본 취지와 적합하다 생각해 장학제도를 개편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작년 말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고 홍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함을 느꼈다. 가장 큰 원인은 접근법의 차이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반값 등록금은 말 그대로 등록금의 절반을 내는 것이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반값등록금은 ‘소득 연계형 반값등록금’, 학우의 소득분위를 10단계로 나눈 뒤 각 분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정부는 전국의 대학등록금이 약 14조 원이고, 정부와 대학이 합쳐 약 7조 원을 지원했기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실현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학교육연구소의 집계 결과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우는 약 40%로, 전체 학우의 절반 이상이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우들은 반값등록금의 실현을 크게 체감하기 어려웠고,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한 학우가 많자 장학금의 형평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 학교 A학우는 “부모님의 직업이 준공무원이라 가정형편과 상관없이 항상 소득분위 산정에서 10분위를 받아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우리 집 보다 형편이 좋은 친구가 소득분위를 낮게 받는 경우가 있었다”며 현재 소득분위 산정 기준의 허점을 이야기했다.
 
 형평성 문제와 대책
 필요중심으로의 장학제도 변화가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작년 고려대에서 성적장학금 폐지를 발표했을 때, 학내에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추진이라는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이러한 변화에도 문제점이 존재한다.
 성적장학금 축소로 인해 중위소득계층이 장학금을 받을 기회가 줄어들었다. 중위소득계층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의 액수는 가계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위소득 계층은 입시 성적을 기준으로 주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자신이 성적보다 한 단계 낮은 대학을 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중위소득계층이 장학제도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A학우는 “1년에 몇 백 만원씩 되는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은 가계에 큰 부담이다. 성적장학금이 있으면 최소한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가계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이런 장학금이 줄어들면 등록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또한, 학내 구성원들 간의 합의가 우선돼야한다. 많은 학우들이 장학제도 개편 취지에 동의하는 추세이다. ‘매일경제’가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약 73%의 응답자가 성적장학금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학우들과 어떠한 협의도 없이 고려대학교 측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SNS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대학교육연구소 김상호 연구원은 “학우들과 논의 없이 장학제도가 개편돼서는 안 된다”며 “무엇보다 학내 구성원들과의 합의를 전제로 개편이 진행돼야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바로 외국과 우리나라 등록금 환경의 차이다. 외국의 대학과 우리나라의 대학 등록금의 규모는 다르다. 독일의 경우 한 때 한 학기의 대학 등록금은 한화로 약 7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그 마저도 받지 않는다. 등록금 자체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성적장학금이 없다 하더라도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중단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의 경우 학기당 400만원에 달하는 곳이 많다. 등록금의 환경이 다르다는 것이다. 등록금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학비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성적장학금인데, 무작정 외국의 추세에 따라 규모를 줄이면 높은 등록금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 따라서 성적장학금을 줄이는 것 보다 대학등록금의 규모 자체를 먼저 줄여야한다.

 서강대 학우지원팀 안석 차장은 “장학금은 희소한 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학금을 분배함에 있어서,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적장학금은 학업성취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적은 그 자체로 학업의 계기다. 장학금의 본질은 성적에 대한 보상이기 전에 공평한 교육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성적장학금과 복지장학금의 가치를 비교하기 전, 장학금의 본질과 취지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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