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서울 신촌 ‘2030유권자 행동 국회행진’ 르포

 

3.26 국회행진을 위해 신촌 연세로에 모인 청년들

  청년들이 뿔났다. 올해 2월 실업률은 1999년 이후 최대치인 12.5%에 달했다. ‘열정 페이’ 논란과 비정규직 문제는 청년들의 경제 사정을 힘겹게 했다. 작년 대학 입학자들은 학자금 대출 빚을 갚기 위해 9년을 일해야 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우리 시대 청년들은 절벽 끝으로 내몰려있다.
  그러나 각박한 현실에서도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 달 26일, 서울 신촌 연세로에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약 1000여 명의 청년들이 모여 국회로 행진했다. 바로 3,26 ‘2030유권자 행동 국회행진’이다. 기자가 직접 행사에 참여해 청년들의 요구 사항을 취재했다.

  발언, 힙합공연, 행위예술…모두 어우러진 ‘청년 문화제’
  서울 신촌 연세로는 추웠던 당일 날씨만큼이나 경직된 분위기였다. 수많은 경찰병력들이 연세로 초입의 차량진입을 막고 무대 뒤편에 굳은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행사 스태프와 현장 경찰이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대회 사회를 맡은 서울대 김보미 총학생회장이 “경찰병력은 물론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도 행사에 참석했다”며 “고생하는 두 기관에 박수를 쳐달라”고 운을 떼자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또 다른 사회자인 박범수 ‘경기청년하다’ 대표는 “2030이 정치를 바꿔보자고 모인 것”이라며 참석한 청년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2030유권자 행동’ 국회행진 본대회는 오후 4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행사는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공연 및 발언으로 구성된 ‘본대회’ 후 오후 5시부터 신촌을 출발해 국회의사당 앞 산업은행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기획됐다. 전국 15개 대학교 총학생회 및 45개 청년단체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청년들은 물론 지나가던 행인들도 발언과 공연들이 다채롭게 구성된 행사를 즐겼다.
  행사는 청년단체인 ‘경기청년하다’ 회원 50명이 꾸민 군무 공연으로 시작됐다. 뒤이어 발언에 나선 한양대 오규민 총학생회장은 ‘팩트체크’라고 명명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오규민 총학회장은 “약 1만 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 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며 “반값 등록금이 실현됐다고 응답한 청년은 전체 대상자의 약 10%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진정한 반값등록금의 실현을 위해 등록금 자체를 낮춰야 한다고 응답한 청년은 무려 72%에 달했다.
  조사 결과에 대해 오규민 총학생회장은 “국가장학금 제도가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도움을 주었는지 의문이다. 학자금 대출도 취업이 안 돼 몇 년 동안 빚으로 남는 게 청년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팩트체크’에서 청년들이 정치권에 가장 바라는 것은 ‘청년 취업’이었고, ‘대학 등록금 인하’가 뒤를 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경희대학교 재학생 민혁(22) 씨는 “고용 문제를 해결할 청년 정책들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 또한 청년들의 경제적 문제도 심각하므로 최저임금 향상 등의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언 이후 동국대학교 사범대 힙합팀인 ‘콩자반’의 공연이 진행됐다. 세 명의 래퍼로 구성된 콩자반은 개사곡인 ‘나라가 이 모양이냐‘, ‘아라비안나이트’를 열창했다. 특히 ‘아라비안나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작년 ‘청년 중동 진출’ 발언을 인용한 가사로 큰 호응을 얻었다. 상지대학교 재학생 A 씨는 “평소 힙합을 좋아한다. 무거운 행사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 힙합을 들으니 색다르고 재밌다”며 “가사 내용에 공감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힙합 공연 후에도 여러 발언이 이어졌다. 이수빈 성신여대 학생은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발언으로 교육부의 정책 개선을 주문했고, 상지대 배준 부총학생회장이 상지대학교 비리재단의 문제점을 알렸다. 또한 알바생, 취업준비생, 등록금 대출 빚 등을 행위예술로 표현한 ‘청년 예술가 네트워크’의 공연은 절박한 청년들의 현실을 그대로 표현했다.
  발언대에 선 김대환 ‘청년좌파’ 회원은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폐가 터지는 바람에 병원비로 400만원을 지출했다. 바로 지금이 우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번 4월 13일 총선에서 청년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눈물을 글썽인 김대환 회원에게 행사에 참가한 청년들과 시민들의 격려 박수가 쏟아졌다.
  탈을 쓰고 나온 택견 시범단은 ‘비리재단’, ‘최저임금’ 등이 적힌 판넬을 부수는 퍼포먼스로 큰 호응을 받았다. 성공회대 재학생 B 씨는 “우리학교 총학생회는 행사에 참가하지 않아 혼자 왔다. 공연을 보고 발언을 들으면서 행사 자체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택견 공연 후 마지막 순서로 ‘2030유권자 행동’에 참가한 총학생회장단의 결의문 낭독이 시작됐다. 총학생회장단은 결의문에서 “헬조선, N포 세대라는 말이 현실이 된 시점에 청년이라는 단어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됐다. 우리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국회로 간다”며 본격적인 국회행진을 알렸다.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는 행진 대열

  우리는 ‘청년답게’ 국회로 간다
  오후 5시 20분, 본대회가 끝나고 행사 참가자들은 각각 자신들의 학교 혹은 청년 단체의 깃발을 들었다. 그리고 경찰들이 차선 옆에 직접 서서 확보한 신촌 로터리 1차선 도로를 두 개의 대열로 나눠 행진하기 시작했다. 앞선 대열은 행사에 참가한 총학생회, 뒤따르는 대열은 청년 단체들로 구분됐다. 각 대열 앞에서 서행하며 대열을 이끌던 트럭 차량에는 행진 중 발언자들이 올라서 청년 투표 독려와 청년 문제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행진 대열에 있던 전남대학교 졸업생 정상엽(30) 씨는 “제20대 총선 때 청년들이 바라는 정책이 꼭 실현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행진에 참가했다. 이번 국회 행진으로 청년들의 요구가 더 큰 힘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동국대학교 재학생 이규장(29) 씨는 “사실 청년 투표율은 그렇게 낮지 않다. 그저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정책이 부족할 뿐”이라며 “기다리기만 하면 절대 정책이 나오지 않으니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행진 중 외친 구호는 시급한 청년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고지서’상의 반값등록금 실현, 최저임금 1만원 보장, 사내유보금 투자를 통한 청년일자리 확보 등은 물론이고, ‘학내 의사 결정 구조에 학생 참여 보장’, ‘일방적 대학구조조정 정책 폐기’ 등 당장 대학 사회에서의 논란도 언급됐다.
  국회행진은 ‘청년다운’ 모습이었다. ‘뱅뱅뱅’, ‘붐바스틱’ 등 신나는 댄스노래가 흘러나오며 참가자들의 흥을 돋우었다. 무엇보다 행진 중간에 청년들의 응어리 진 마음을 풀 수 있는 코너들이 눈길을 끌었다. ‘OUT ZONE’에서는 문장이 적힌 뽁뽁이가 바닥에 설치돼 참가자들이 폐기하고 싶은 문장들을 밝고 지나갔다. ‘HIGH FIVE ZONE’은 행사 스태프들이 행진중인 참가자들과 격려의 하이파이브를 진행하는 코너였다. 서강대교 진입로 ‘SHOUTING ZONE’에서는 참가자들이 국회를 향해 함성을 지르는 풍경도 연출됐다.
  행사 당일 서울 날씨는 영상 2도에 육박했다. 오후 6시가 다 돼 해가 지면서 날씨는 더욱 추워졌다. 행진 대열은 국회가 가까이 보이는 서강대교에 진입했다. 흥겨운 댄스곡이 나오는 것과 대조되는 차가운 강바람이 행진 대열을 맞았다. 청년들은 서강대교 중간 아치에서 청년들의 요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국회가 보이는 방향으로 게시했다.
  서강대교 남단 ‘WAVE ZONE’에서 파도타기 퍼포먼스를 끝낸 행진 대열은 깃발과 피켓을 내리고 우회해 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행진했다. 이는 국회의사당 100m 반경 내에서 집회·시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행진은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지나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산업은행 앞에서 경찰과의 마찰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됐다.
  정리 발언에 나선 한국청년연대 윤희숙 대표는 “국회가 보이는 서강대교를 건너며 우리는 ‘이대로 가면 청년들의 미래가 없다’는 다 같은 마음을 지녔을 것이다.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정치를 바꿔야 한다”며 이번 총선에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청년 투표율‘이라는 마지막 과제남아
  2030유권자 행동 국회행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청년 사회는 이번 총선 청년 투표율이라는 마지막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이번 행사에 대해 ‘2030유권자 행동’ 유지훈 공동대표는 “기존 집회와 달랐던 다양한 시도들, 청년 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이 촉구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나 2030 투표율이 얼마나 올라갈 것인지가 과제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지훈 공동대표는 “정치권을 바꾸기 위해 청년들이 꼭 투표장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4월 13일 실시되는 제20회 국회의원 선거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만약 선거일에 주소지 투표소에서 투표가 어려운 경우 별도의 신고 없이 4월 8일·9일 사전투표소에서 사전투표가 가능하다(우리학교 사전투표소, 유성구청 4층 대회의실). 투표장 입장 시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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