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서한나

 (1) 나, 요즘 사는 게 재밌어

 5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있다. 의대생 아니고,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대학에 잔뜩 절여지고 나서야, 대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게 됐다.
 지금 나는 팔자 좋게 사회학과 강의를 하나 청강하고 있다. 무릇 대한민국의 졸업예정자라면 구직시장에 진입해 나의 매력을 어필해야 할 이 엄중한 시기에, 학점에도 못 보탤 청강이라니.  이 선택엔 깊은 속뜻이 있을 법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냥’이었다. 다른 과의 강의 계획서를 이것저것 읽어보다가 그냥, 확 끌렸다.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와 불평등에 대해 배우는 수업이었다.
 내 끌림은 정확했다. 이 수업은 휴강하면 아쉽겠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매시간 “아…”한다. 뒤에는 ‘그런 거였어?’가 따라붙는다. 살면서 내가 느끼는 거의 모든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나의 외부에서 온다는 걸 알았다.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고, 위계와 차별과 불평등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 선배들이 정한 가치 체계 안에서 살고 있다.
 뚫어져라 교수님을 쳐다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거라면 나도 이 판을 건드려볼 수 있지 않을까?’ 호랑이 기운이 솟고, 마침내 천하무적이 되어 강의실을 나온다.
 사회학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면, 어떤 현상이나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의 이면을 상상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여태 두 눈으로 살다가, 새로운 눈알 하나를 더 달게 됐으니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겠는가. (분노하는 재미 포함) 사회학은 한 사람과 그 사람이 사는 사회구조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학점을 채우기 위해 듣는 강의가 아니라, 알고 싶어서 듣는 강의가 얼마나 소름 끼치게 즐거운지 온 캠퍼스에 자랑하고 싶다.
 아, 자랑할 게 또 있다.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매력적이다. wage와 salary의 차이를 설명하다 말고, “먹는 샐러리 아니에요.” 툭 뱉는 분이다. 부장님 개그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하는 건 고수만 가능하다. 교수님이 이것저것 명쾌하게 설명하실 땐 넋 놓고 보게 된다. 내가 허밍으로 따라 하는 팝송을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부르는 사람을 볼 때처럼.
 교수님을 좋아하는 건,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 좋아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앞에 있는 저분의 세계관이 궁금하고, 생각을 흡수하고 싶어진다. 내 우주를 넓혀줄 것 같다. 지난 4년을 이렇게 꽉 채워 살았다면, 지금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었으려나. 수업도 찐하게 듣고, 사람도 찐하게 좋아하고. 그런데 써놓고 보니까 좀 쑥스럽다. 나 아직 교수님이랑 안 친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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