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들어 사는 삶

 

   처음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내 나이는 14살이었다. 일독하고 나면 사고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말에 홀린 것처럼 구입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첫 문단을 읽자마자 생각이 바뀌게 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14살, 사색과는 거리가 멀었던 과거의 나는 단호하게 책을 덮었다. 그리고 지난 1월, 책의 저자인 신영복 선생이 타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책장에 꽂혀져 까맣게 잊고 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시 꺼냈다.
  여전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어려웠다. 故 신영복 선생이 20년간의 수감생활에서 다져나간 사고들을 단 일주일만에 이해하고자 한 것부터가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 대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남의 인생에 세들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징역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징역 산 햇수가, 물론 여러 번에 나누어 산 것이지만, 도합 10년이 넘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 이들에겐 사회가 오히려 타향이고 객지입니다. 이러한 인생이 이른바 남의 세상에 세들어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들로 하여금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처럼 참혹한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 319쪽」
  세 들어 사는 삶은 징역을 사는 이들만의 삶은 아닌 것 같다. ‘자기주도형 학습’, 입시를 거칠 때 일상적으로 들은 단어였다. ‘자기주도형 학습’이 주목받자 이내 학원가에서는 ‘자기주도형 학습 컨설팅’이 열풍을 끌었다. 너도나도 본인의 학습·진학·진로를 자기 주도적으로 하기위해 컨설팅 받았다.
  대학 입시 이후에도 다를 건 없다. 사회가 원하는 토익, 학점, 스펙 앞에 대학생들은 사색은 내던진다. 토익학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루고, 도서관은 학습을 위한 독서실로 변한지 오래다. 스펙에 도움 되지 않을 일은 모두 무의미한 시간 낭비로 치부된다. 세 들어 사는 삶은 계속된다.
  대학 졸업 후의 삶은 석방만을 기다리는 감옥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다. 노량진으로, 독서실로, 책상 앞에 본인을 가만히 가두고, 무언가를 막연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세 들어 사는 삶에 사색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영복 선생은 세 들어 사는 삶 속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들 자신의 그 왜소한 삶에 기울이는 그들 나름의 노고와 진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온몸으로 살아가는 삶은 비록 도덕적으로 타락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진실성을 훼손하지는 못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 319쪽」
  온몸으로, 비록 그것이 본인이 선택한 삶이 아니라할지라도, 단군 이래 가장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청춘들이 여기 있다. ‘세 들어 사는 삶’을 무기 징역으로 선고 받은 청춘들이 석방 받은 삶을 되찾을 수 있길,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길 온몸으로 조심스럽게 사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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